헤이리에서 들은 노래
- 바리톤 임준식의 작은 음악회에서 -

바리톤 임준식(1969년 생) ; 그 이름과 노래 모두 첫 대면이다. 지난 7월 15일(화) 헤이리의 카메라타 음악실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서다. 이태리에서 성악공부하고 오페라 무대에도 많이 섰다는 그는 요즘 무섭게 뜨고있다. 노래의 기량도 훌륭하지만 공연을 이끄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부드럽고 편안한 무대 매너에다 뛰어난 화술로 관객을 휘어잡는다. 번뜩이는 재치와 위트로 관객을 끊임없이 웃기며 무대와 객석을 한데 섞는다. 엄숙한 클래식은 저리 가라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선언하고 재미있는 공연을 지향 한다는 그의 음악철학이 인기를 얻으면서 여러 곳에서 그를 모시기에 경쟁이다. 우리 송년회 모임에 초대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날 임준식 성악가가 부른 8곡 중에서 아리아 2곡과 이태리 가곡 1곡을 들어본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음원을 구하지 못해 다른 성악가의 노래로 대신하지만, 우리의 맹주선이 오페라에 깜짝 데뷔(?)하는 장면의 노래는 알아두는게 좋겠다. (갤러리 7월 29일자 사진과 글 참조)
|
황인용의 뮤직 스페이스 Camerata
 벽면 가득 견고한 요새처럼 버티고 선 거대한 스피커 시스템
왕년의 인기 아나운서에 음악DJ로도 이름을 날린 황인용은 이젠 많이 늙어 보였다.
그래도 소원이던 음악감상실을 턱 하니 잘 짓고 손님을 맞는 미소엔 여유가 넘친다.
이름하여 '카메라타'. 이탈리아어로 '작은 방', 또는 '동지들'이라는 뜻에 어울리게
기둥 하나 없고 장식도 별로인 3층까지 뚫린 공간에 밝은 햇빛과 음악만 가득하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 전체를 육중하게 차지한 2m짜리 대형스피커 4대가
거친 노출 콘크리트에 붙박이로 설치되어 독특하고 압도적인 분위기로 긴장시킨다.
이름난 빈티지 명품의 스피커는 1930년대에 나온 Western Electric, 그리고 40년대
독일 Klangfilm Euronojunior 제품이다. 모두 외국의 극장에서 쓰던것을 들여왔다.
턴테이블은 EMT, 앰프는 물론 진공관식으로 300B형 Be Research가 8대나 된다.
소장 LP판이 15,000장. 80년대 부터 사 모았다. 오른쪽 라이브러리를 들여다 보니
CD판은 한 장도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세대에 익숙한 아날로그 음악의 천국이다.
"아날로그는 추억이고 디지털은 현실이다. LP음악은 추억을 재생시키는 묘한 매력
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직직거리는 소릿골 잡음이 더러 묻어나는 LP의 매력은 향수
처럼 그립고 훈훈하다. 잡음 없이 매끈한 CD 소리는 틀에 박힌 현실의 질곡과 많이
닮았다. 황인용과 같은 시기에 모은 내 LP판 1천여장도 그래서 여태 못 버리고있다.
|
《esso》
|
그 후 이탈리아 피에죨레 로마노 오페라 극장 콩클 오디션, 비뇰라 국제 성악 콩클, 그리고 알라레오나 국제 성악 콩클에
연이어 입상함으로서 그의 진면목을 오페라 본 고장에서 인정받은 바리톤이다.
피렌체 ‘엔리코 카루소 음악협회’ 연주 수석인 그는 독일 베를린 음대 교수 초청 마스터스클라스 성악부문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귀국하여 오페라 대중화를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소개한 문학수 기자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이 글은 2006년 blog.joins.com/bellroky 에 실은 글을 퍼 온 것이다.
'웃기는 임준식을 만나면 오페라가 재밌다'
바리톤 임준식(37)은 재담꾼이다. 청중의 배꼽을 한바탕 흔들어놓고는 본인이 직접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 제친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같은 ‘폼나는’ 무대가 아니라 음악감상실이나 카페의 간이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성악계의 채플린’.
하지만 이 ‘웃기는’ 성악가가 세계 3대 바리톤 중 한 사람인 이탈리아의 롤란도 파네라이(Rolando Panerai)의
수제자라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카루소상’ 축하무대에 6번이나 오른 유일한 한국인 성악가라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저는 ‘언더’(Under) 성악가인 셈이죠. 제 노래를 듣는 분들이
‘아하, 오페라도 이렇게 재밌구나!’ 라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어요.
물론 오페라를 풀코스로 즐기려면 예술의 전당으로 가야 합니다. 저는 다만 재미있는 ‘맛빼기’를 보여드리는 거죠.”
국내에서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피렌체로 떠난 것이 1995년.
임준식은 20곡의 레퍼토리를 준비해 롤란도 파네라이의 문하에 들기를 청했다.
파네라이는 50년대에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올랐던 성악가.
지휘자 카라얀 ‘사단’의 대표적 바리톤이었고, 마리아 칼라스, 주세페 디 스테파노 등과 숱한 무대에서 함께 노래했다.
그는 “받아주기는 하겠지만, 어디 가서 내 제자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며 어렵사리 문을 열어줬다.
“처음엔 미덥지 못하셨던 모양입니다. 몇 달 지나서야 가족들한테 인사시키고,
본인의 이름을 따서 ‘롤란드 임’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죠. 정식으로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었습니다.
또 ‘엔리코 카루소 협회’에 ‘이 놈이 내 제자’라고 추천해주셨지요.”
불세출의 성악가 카루소를 기리는 ‘엔리코 카루소 협회’(Enrico Caruso Assosiazione)의 회원들은
최고의 ‘귀’를 가진 청중이다.
가사의 뉘앙스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거나 고음 한 개를 슬쩍 얼버무리고 넘어가면 곧바로 질타와 비난이 쏟아진다.
임준식은 그들 앞에서 매달 한번씩 ‘실전’을 치렀다.
그리고 97년에 ‘카루소상’(Premi Enrico Caruso) 축하무대에 처음으로 섰다.
79년 시작된 이 상은 카루소협회가 거장에게만 수여하는 일종의 ‘명예의 전당’.
마리오 델 모나코, 주세페 디 스테파노, 레나타 테발디, 주세페 타데이, 미렐라 프레니 등
역대 수상자들의 면면이 그야말로 화려하다.
2006년 7월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28번째로 수상대에 섰다.
임준식은 이 ‘별들의 잔치’에서 여섯 번이나 노래했다.
오페라 본토인 이탈리아의 ‘귀명창’들이 인정한 바리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