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브람스, 그는 철저한 독신주의자였지요. 그 당시 낭만파의 거두 로베르트 슈만을 찾은 젊은 브람스는 슈만의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시작하자, 슈만은 잠시 그를 제지하고 아내 클라라를 불러내었지요. 그것이 브람스와 클라라의 첫만남이었습니다. 슈만은 브람스의 천재성을 인정하여 뒷받힘해 주었고 브람스는 스승과도 같은 슈만에게 많은 주옥같은 음악을 헌정하고 존경하였지요. 나이로 보아 거의 어머니또래인 클라라를 스무살 브람스는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슈만은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그 후 슈만은 세상을 떠나고 클라라는 일곱번째 아기를 갖고 있었지요. '사랑하는 어머니~' 그렇게 스물 한살의 브람스는 클라라를 불렀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통속적인 것이 아니라 금욕과 극기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지요. 브람스는 클라라와 헤어지고 괴팅겐 어느 대학 교수의 딸 아가데 폰 지볼트를 만납니다. "당신을 사랑하오! 그러나 결혼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쓸 수는 없오!" 그 녀와 헤어진 그는 지금 흐르는 sextet 1번을 작곡합니다. 제1과 제2 바이올린이 A-G-A-D-C-E 음을 소리 낼 때 마치 잠시 만났다 떠난 아가데의 이름이 계속 불리어지는 듯한 효과를 보인다고 합니다... 요하네스 브람스!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지요.
글세요~ 브람스는 마흔이 지나자 더욱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삶이 짙어지기 시작하였지요. 어두움에 쌓인 비좁은 독신자 아파트에 거처를 잡고 은자의 상징처럼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0여년간 죽을 때까지 다림질을 안한 옷을 입고 바지가 찢어지면 밀납을 발라 구멍을 메꾸고 거실에는 책과 악보로 앉을 자리가 없는 그런 생활.... 그러나 그는 저속하지는 않았지요. 그 무렵, 그의 음악을 인정하는 표시로 캠브리지 대학이 그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였으나 그는 구겨진 엽서 한장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 그리고 그는 젊은 시절 그토록 사랑하였던 클라라 슈만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64세의 삶을 끝냅니다.
"나는 내 자신을 표현해 내는 일을 아직 시작조차도 못했는데....." 未完의 삶을 아쉬워 하면서 떠나가는 巨人의 마지막 투덜거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