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Strauss (1864-1949)
Also sprach Zarathustra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후기 낭만주의의 거장 리하르트 스트라우스는 리스트가 이룩한
교향시라는 음악 형식과 바그너의 표현 수법을 융합하여 뛰어난
교향시적 표제음악을 많이 남긴 작곡가입니다.
또한 관현악법으로서 베를리오즈, 림스키 코르사코프 이후의 최대
작곡가인 그는 지휘자로 뿐 아니라 문필방면에도 뛰어났으며 철학에도
조예가 깊어 인격과 덕망이 높았고 휴매니스트로서의 또 다른 일면은
나치정권에 반발하여 망명길에 오르게 합니다.
1896년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철학서에 감명받아
그의 감정의 움직임을 하나의 교향시로 판타지 형태에 용해시켜
그의 작품 30번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는 만들어졌습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적이며 매우 詩的인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도자(修道者)인 짜라투스트라가 산에 들어가 수도를 하며 산에서
내려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쓴 '짜라투스트라의 서설'과 인간에 관한
여러가지 일들, 즉, 기쁨, 전쟁, 사랑, 죽음, 괴로움 등의 약 80개의
제목을 가진 다양한 내용의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스트라우스는
이 곡을 만들면서 악보 서두에 니체의 원저의 序文을 싣고 이를 표제로
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철학을 음악화한
예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에 대해 스트라우스는,
"나는 철학적인 음악을 쓰려고 한 것도 아니며 니체의 위대한 작품을
음악으로 묘사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음악이라는 수단에 의하여
인류발전에 대한 관념을, 그 기원에서 그 발전의 각가지 양상을 거쳐
니체의 초인 사상에 이르기까지를 전달하려 했다. 교향시 전체를
니체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로 가장 훌륭한 예증을
보인 니체의 천재성에 대한 찬미를 그린 것이다."
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처음엔 조용하고 낮은 C 音으로 밤의 장막이 걷히고 새벽이
다가옴을 나타냄으로서 시작됩니다. 장중한 자연의 주제가 트럼펫에
실려 시작되는데 재현부에서는 스케일이 큰 관현퓜萱막?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곡을 만들 무렵 그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강의를 들었으며 1888년에는 교향시인 "Don Juan 돈환", "Tod und
Verklarung, Death and Transfiguration"을 작곡하여 천재로 불리면서
표제음악적인 교향곡이나 오페라도 본격적으로 작곡하여 32세에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Symphonia domestica 가정 교향곡",
2년 후엔 오페라 "Salome 살로메", 3년 후엔 오페라 "Elektra 엘렉트라",
"Der Rosenkavalier 장미의 기사" 를 작곡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전 작품을 대표할 정도로 손꼽히는 명곡으로서 각 연주회의
주요 레퍼토리로 등장하여 연주되고 있습니다.(인용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