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찬가 :: 김인배, trumpet

by 일 마레 posted Sep 12,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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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찬가 - 김인배, trumpet





        그럴 수 없다 - 류시화


        물 속을 들여다보면
        물은 내게 무가 되라 한다
        허공을 올려다 보면
        허공은 또 내게 무심이 되라 한다
        허공을 나는 새는 그저
        자취 없음이 되라 한다

        그러나 나는 무가 될 수 없다
        무심이 될 수 없다
        어느 곳을 가나 내 흔적은 남고
        그는 내게 피 없는 심장이 되라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도둑처럼 밤중에 이슬을 밟고 와서
        나더러 옷을 벗으라 하고
        내 머리를 바치라 한다
        나더러 나를 버리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는 내게 물이 되라 하나
        나는 불로서 타오르려 한다
        그는 내게 미소가 되라 하지만
        그러나 아직 내 안에 큰 울음이 넘쳐 난다
        그는 내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라 하나
        나는 그럴 수 없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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