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을 위해 만든 곳이자 모차르트가 대주교를 위해 연주했던 곳
모차르트(1756~1791)는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6세 때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유럽 연주 여행을 떠납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당시의 여제였던 한 소녀가 그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고마워. 어른이 되면 너와 결혼 할거야' 라고 말하여 이 소녀가 모차르트보다 한 살 많았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루이16세'와 정략 결혼하고 왕비가 됩니다.
유폐되었다가 단두대로 처형당하는 비운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만약 '모차르트'와 결혼하였다면, 그녀에게 이런 비극은 없었을까요?.
운명이란 하나의 주어진 어떤 팔자가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믿고 싶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는가가 중요하지 싶습니다. 운명 앞에 놓인 노예가 아니라 운명을 리더하는 주인공 참 주인 말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
음악살롱 > 음악살롱
2010.02.18 11:37
모차르트와 마리 앙투아네트...
조회 수 2063 추천 수 334 댓글 2
모차르트와 앙뜨와네뜨의 그림을 본 기억이 납니다.
모차르트의 청혼 이야기는 이젠 큰 관광자원이란 감을
떨칠수가 없습니다.
모차르트 당년의 그의 신분은 하인급 이었습니다.
그때 음악가들이란 교회나 왕실의 고용인에 불과 했습니다.
요리사보다 신분이 낮았고 시종보다 조금 높았다는게
그라이터나 엘리아스, 맥가, 솔레르스가 쓴 모차르트 평전의
공통적 견해 입니다.
어려서 미모의 소녀를 보고 철모르고 한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모차르트 보다 24년을 먼저 태어난 하이든도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하인 아닙니까?
파파 하이든은 하인복장을 하고 있어야 어울리며 주인 허락없이는
여행도 마음데로 못했습니다.
흔히 평자들은 모차르트에게는 3가지 수수께끼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천재였는가? 혁명가 였는가? 암살 당했나?
다섯살에 첫 작곡을 하고 8세에 교향곡, 13세에 오페라를 작곡한
모차르트는 천재 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위인 보다 뛰어난 아버지를 갖고 있는 모차르트는
만들어진 천재 입니다. 제본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드는 대학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한 뛰어난 인문학자.
다만 직업으로서 음악인의 길을 걸었을 뿐입니다. 지적인 면에서 그에게 필적할
음악인은 당대에는 없었다는게 정평입니다.
모차르트는 학교를 다니거나 아버지 이외 사람으로 부터 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모차르트 교육에 올인한 아버지 레오폴드는 만년 궁정악단 부악장 이었지만
심지어 자기의 작품도 시연을 안한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노력과 극성은 모차르트로는 또하나의 뛰어넘어야 할
벽으로 기능했고 아버지가 죽고 모차르트는 4년밖에 더 못산 원인 이기도.
모차르트는 아버지에 의해 키워진 신동입니다.
모차르트는 혁명가 였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그가 산 세월을 리뷰해 보아야 합니다.
1756년-1791년, 35년간은 절대왕권이 서서히 몰락하던 시기 입니다.
그가 태어난 해에 7년 전쟁은 시작 되었고 모차르트 생애에 두차레의
대혁명이 지나갑니다. 미국독립전쟁과 프랑스 대혁명.
모차르트와 그의 아버지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뛰쳐나와 과학과 합리적
이성이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외친 그시점을 살았습니다.
모차르트의 비극은 그가 살았던 세월이 과도기였다는데 있습니다.
모차르트 부자는 프리메이슨 단원 이었습니다.
프리메이슨은 18세기 기존질서에 맞서 개혁과 진보를 표방 했습니다.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와 그들의 의식을 반영하는 운동 이지요.
또 모차르트가 살던 시절은 입장료를 지불하는 관객이나 기획연주는 물론
작곡가가 곡을 팔고 인세를 받는 시장이 없던 시절입니다.
음악양식에 있어서도 종교음악을 세속적 음악이 질과 양면에서
압도하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18세기 지배계급은 오페라에 있어서도 비극적 측면을 상류계급의 가치와
지배의 미덕을 나타내준다고 선호했는데 모차르트는 봉건권력에 대한 공격을
담고있고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촌극으로 여겨졌던 희극쪽을 택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이 모차르트의 정치적 입장을 극명하게 표출한 작품입니다.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혁명성을 이야기 하는 연유는 그의 음악적 환상과
음악적 양심이 자기가 살던 사회의 권력구조를 부수어 볼려고 했다는데 있습니다.
그런점에서 보면 모차르트의 삶은 충분히 혁명적 이었다고 평가 할수가 있지요.
피터 셰퍼의 희곡에 기초한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살리에리의 질투에 의한 암살설을 채택, 광범위하게 각인 시켰습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에 겁을 먹은 요제프 2세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적>에
앙심을 먹고 살해 했다는설도 있고 평전에 손을 댄 많은 필자들은
"사회적 공모에 의한 암살"로 추정 합니다.
우리 9회에는 Esso를 비롯 김혜숙씨, 허영옥씨등등 워낙 음악의 고수들이 즐비해
모차르트에 대한 이 횡설수설은 여기서 접고 제 전공인 앙뜨와네뜨로 넘어 갑시다.
(안체보다가 행랑체 영 커져 미안 합니다. 이거 뭐 따로 떼내 게재할 글이 못됩니다.
무릎과 허리가 쑤셔 잠을 못자 앙뜨와네뜨는 다음 기회에 올리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