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이런 소원이 있었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고.… 장래 결혼을 하면 서영이에게도 아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파랑새> 이야기도 해 주고 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의 엄마처럼 나하고 구슬치기도 하고 장기도 둘 것이다. 새로 나오는 잎새같이 보드라운 뺨을 만져 보고 그 맑은 눈 속에서 나의 여생의 축복을 받겠다.” - 피천득, 《서영이》 중에서 ![]() 2년 전 타계한 수필가 피천득이 큰딸 서영 씨에 대해 쓴 글이다. 피천득에게 서영 씨는 “딸이자, 뜻이 맞는 친구이자, 존경하는 여성”이었다. 애지중지하는 절대적 사랑의 대상이자 문학적 상상력의 원천이었던 셈이다. 그 피서영 씨의 아들이자 故 피천득의 외손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브가 2009년 12월 중순 한국에서 첫 독주회를 갖는다. 비슷한 시기에 첫 음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도 출시한다. 스테판이 2008년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피아니스트 임동혁 등으로 구성된 꽃미남 앙상블 ‘디토’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국민 수필가 피천득의 외손자’로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열정적이고 똑똑한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총명하면서도 그윽한 눈빛, 귀족적인 자태 등이 인기에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얼마 전 400여 명으로 구성된 그의 팬 카페가 생겼다. 스테판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다. 미국 클래식 최고 권위의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수상했고(2002년), 2007년 뉴욕 필하모닉과 성공적으로 협연하면서 더욱 실력을 인정받았다. <워싱턴포스트>는 그의 연주에 대해 “21세 바이올리니스트의 음색과 정확한 인토네이션을 듣고 있자면 펄만이나 스턴의 초기 연주를 듣는 것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평했고, <시애틀 타임스>는 “모든 것을 성취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탁월한 연주”라고 했다. 독주회를 앞두고 미국에 있는 그와 영문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국민 수필가 피천득의 절대적 사랑의 대상이었던 딸, 물리학자 피서영 씨의 면면도 궁금했다. 그러나 스테판은 이 부분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 “나는 공인이 아니다”라며 인터뷰나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것이리라. 한국에서 첫 독주회를 앞둔 소감은. 매우 영광이다. 그동안 오케스트라나 앙상블 ‘디토’의 멤버로 연주하다 독주회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매년 여름 디토와 순회 공연을 하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것도 무척 좋지만, 독주회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소나타 3번’, ‘스케르초 3단조’, 베토벤의 ‘바이올린소나타 5번-봄’,쇼팽의 ‘녹턴 C#단조’ 등을 연주한다고 들었다. 선곡의 기준은. 베토벤의 ‘봄’ 소나타와 브람스의 3번을 함께 연주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조합이다. 브람스는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봄’은 베토벤의 다른 곡들과 달리 도전적이거나 의기양양한 분위기가 아니라 서정적이다. 브람스의 곡은 완전히 다르다. 어둡고 운명적이며 극적이다. 마지막 곡으로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선택했다. 공연을 마무리하기에 좋을 뿐 아니라 ‘걸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인 수필가 피천득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수필가다. 네 살 때부터 10대가 될 때까지 한국에 와서 외할아버지와 여름방학을 보낸 것으로 안다. 2년 전 작고하셨는데,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다면. 외할아버지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음악가로서의 내 삶에 굉장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할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변함없다고 믿는다. 그분의 말씀, 그리고 응원은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와 보낸 추억 중 기억나는 한 장면을 얘기해 달라. 할아버지로부터 가장 영향을 받은 것은 모든 종류의 예술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음악・문학・시각예술 등. 할아버지와 함께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았다. 또 할아버지는 내게 책을 읽어주곤 하셨다. 삶의 좌우명 같은 것은 한 번도 이야기하신 적이 없지만, 할아버지는 여러 형태의 예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내 눈을 뜨게 해주셨다. 이것이 내가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쳤다. 당신의 부모님은 모두 물리학과 교수다(어머니 피서영 씨는 보스턴대, 아버지 로먼 재키브는 MIT).당신이 음악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머니는 내가 특정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한 번도 강요한 적이 없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진지했고,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가 내게 어떤 직업이든 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신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음악가의 삶을 사는 게 누가 권해서가 아닌, 내가 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경험한 외할아버지, 어머니의 나라 한국과, 성인으로 전문 음악가가 되어 찾은 한국은 어떤가. 근본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한국을 찾았을 때는 대부분 할아버지댁에서 생활했다. 그런데 2008년과 2009년 여름, 디토와 함께 연주 여행을 할 때는 여러 도시들을 이동하면서 무대에 섰다. 완전히 다른 경험이지만, 두 가지 모두 소중하다. 심리학을 복수전공한 이유는. 하버드대에서 음악과 심리학을 복수전공했다.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는 음악 외에도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연주할 때 작곡가의 의도와 본인의 개성 중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는가. 물론 작곡가의 의도다. 작곡가의 생각과 의도를 참고하기 위해 음악 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인다. 첫 음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이 곧 출시된다. 브람스를 선택한 이유는. 브람스의 소나타들은 각각 개성이 뚜렷한데다, 곡마다 3악장까지 연주하는 동안 브람스의 다양한 특징에 대해 넓은 시야를 갖게 해준다. 브람스 소나타는 내게 특별하다. 오랜 시간 연주해 온데다 연주할 때마다 멋진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내가 연주하면서 감동하듯 청중도 감동하기를 바란다. 누군가 그 순간 나처럼 감동을 받고 공연장을 떠난다면, 나는 할 일을 다 했다고 느낄 것이다. - Chosun.com에서 전재 (글쓴이 : 김민희 TOP CLASS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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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23:04
바이올리니스트 재키브....피천득의 외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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