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olf Serkin - Beethoven Sonata No. 30, Op. 109
나른한 오후 낮은 산행을 하였습니다.
산들거리는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잎... 이런 오후가 되면,
베토벤 후기 소나타와 함께 꼭 생각나는 시가 한편 있습니다.
황동규시인의 < 봄날에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 입니다.
베토벤 30번 소나타는 아주 서정성이 넘치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입니다.
1820년 늦은 여름에 완성 되었다는 이 소나타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 내면에 삶의 기쁨, 슬픔, 또한 고통마저 자신의 것으로 껴안은 관조된 모습으로
기도하듯.노래하듯 울리는 선율은
가끔은 일상에 지친 내 어깨를 위로하듯 다독거려 주기도 합니다.
점차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베토벤은 삶에서 뒤엉켜 있던 모든 것들을
조용히 제자리로 돌려 놓습니다.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는 역시 경륜이 있는 연주자의 연주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아요.
베토벤의 내면의 모습을 아무리 연주를 잘 한다고 해도
젊은 연주자들이 베토벤을 표현해 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듯 합니다.
역시 연륜이 있는 제르킨의 연주가 사색적인 베토벤의 내면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동규 시인도 아라우 연주의 베토벤 후기 소나타 30 번을 시에 등장 시킵니다.
황동규 시인은 아라우의 연주를 아주 좋아했나 봅니다.
아닌게 아니라 저도 여러 연주자의 연주를 비교해 감상해 보았지만
역시 아라우의 연주를 감상하다보면 가장 여유로우면서, 느리게,
늦은 봄 날의 나른한 오후를 잘 표현해 준다는 셍각을 합니다.
위의 제르킨 연주는 마지막 악장 거의 마지막 부분 연주입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연주입니다. 비교 감상해 보세요.
- 황동규 시에 나오는 베토벤 후기 소나타 30번 마지막 악장 입니다.
- 약 16분 정도의 연주를 한 편의 시와 함께 감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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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를 들으며
문주란 소철 귤 화분 속 여기저기 내려앉아 피어 있는
민들레들,
턱이 낮은 네모난 괭이밥 분 가장자리에
아슬아슬 붙어 핀 놈도 있네.
이놈들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지,
초봄 내 망사 창을 닫아두었는데.
모르는 게 어디 한두 가진가.
어느 날은 마음에 가까운 것 멀리하고
먼 것 가깝게 해보려고
몇 번 읽다 던진 책 열심히 읽었다, 전화 한 통 없이.
(데리다, 데리다?)
세상 모든 일 다 그렇다고 하지만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천천히
그 누구보다도 천천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마지막 악장을 치듯
치는 도중 찻물 끓어 그만 의자에서 일어섰나,
곡이 끝나듯
그렇게 살고 싶다.
오늘 같은 봄날 오후
미시령에 차 세우고 문을 열자
고요,
아 이렇게 미치게 바람 자는 미시령도!
저 하늘, 저 고요 속, 춤추는 호랑나비,
저 형상, 저 무한 곡선!
피렌체 남쪽 백여 리 시에나 시(市) 언덕
두오모 성당에 빨려들어간 오후 두시
정문 위 스테인드 글라스가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성상(聖像) 모자익들 일순 승화하고
창 전체 세상 전체가 온통 부신 빛.
눈감으면
눈의 안마당에 들어와 춤추는 저 무한 형상령(形象靈)
저 춤의 무량(無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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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에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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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