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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악장 - Allegro assai 베토벤 소나타 <열정>을 연주하고 있었어 프란츠 폰 브룬스비크 백작에게 내 연주를 헌정하고 싶어졌어 다섯 살의 내가 두드리는 둔중한 피아노 소리를 손가락이 짧아 트릴과 옥타브를 다 집지 못해 자주 울었어 청중들은 내 손가락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베토벤을 사랑했어 음량의 폭을 극대화하고 혼돈의 색채감을 더해 나 말이야, 이젠 내 생에게도 이 곡을 헌정하고 싶어졌어 오케스트라적 음색을 추구하고 악장 간 유기적인 주제를 사용한 것이 마음에 들어 안식과 아픔이 서서히 침대 위로 나를 눕게 했어 제2악장 - Andante con moto, attacca 음률의 강물 속에서 수영하는 테레제는 없었어 탄탄한 턱과 위쪽을 노려보는 날카로운 눈빛 그의 시선이 강물 속에서 내게로 다가왔어 지금 내 손가락은 말할 수 없이 길어 이젠 베토벤을 치지 않아 변주가 진행되면서 한 옥타브씩 올라갔다가 클라이맥스 이후 다시 처음의 낮은 음역의 주제로 되돌아오는 것 나의 생도 올라갔다 내려왔다 했어 어지럽고 심하게 현기증이 났어 밤들, 껍질만 벗겨내는 밤들 열 손가락 끝 지문들이 껍질을 벗으며 정맥이 돋아난 목을 드러냈어 끝은 아니었어 지향하는 지점은 미래의 음악이었어. 시였어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있는 곧 들이닥칠 폭풍을 예고했어 제3악장 - Allegro ma non troppo, Presto 허깨비들의 행렬이 론도 형식으로 흘러갔어 백 번도 넘게 강물을, 소나타를, 테레제를 끊어내고 끊어냈어 내가 볼 수 있는 건 차돌 닮은 음표들의 표정 음표들의 행진 거부하는 힘찬 전주와 폭풍우를 불러일으키는 생명들의 좌충우돌 그리고 배신 저항 무감각들에의 나의 선망 질주와 멈춤 사이에서 짧은 손가락에의 열패감이 떠올랐어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끝맺음 연속적으로 휘몰아치는 내 생의 아르페지오 음악은 내 시의 얼개를 언제든 폐기할 수 있었어 Arthur Rubinstein, Piano (Recorded January, 19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