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by 허영옥 posted Sep 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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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그는 수많은 왈츠를 작곡하여 '왈츠의 왕'이라고 불린다. 그의 아버지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인데, 그는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또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생들도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이렇게만 보면 단란한 음악 가문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은 쉽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그는 아들이 상업을 공부해서 은행가가 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열혈 음악 소년이었던 아들은 음악을 포기할 수 없어, 아버지 몰래 음악을 배웠다. 그러다 결국 음악을 배우는 것을 아버지께 들켜서 아버지에게 심한 매질을 당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아들에 몸에 깃듯 음악을 쫓아내려고 채찍으로 후려쳤다고 한다.

  

  전쟁의 폐허 위에 꽃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화창한 선율

  그렇게 혼나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자 드디어 자유롭게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는 아들이 음악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남편에 대한 복수심과 아들에 대한 사랑이 섞인 행동일까?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자신의 악단을 만들었고, 빈의 음악계에 데뷔하게 된다. 그가 불과 만 19세일 때이다. 아들이 악단을 이끌고 음악 인생을 시작하니, 아들과 아버지는 졸지에 경쟁관계가 되었다. 아들이 돔마이어 카지노라는 곳에서 데뷰 무대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곳은 아버지가 자주 연주하던 장소였다. 그때 빈의 언론은 '슈트라우스 대 슈트라우스'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부자 사이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화가 난 아버지는 다시는 돔마이어 카지노에서 공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들의 경쟁 관계는 아버지가 5년 후 성홍열에 걸려서 사망하는 바람에 끝난다. 아들은 아버지의 악단을 인수하여 자기의 악단과 합쳐서 음악을 계속하게 된다. 그 후 그의 명성은 아버지를 뛰어넘고 해외 공연도 자주 다닐 정도로 인기인이 되었다. 후의 일이지만 '왈츠의 왕'이라는 별명도 1870년대 미국 공연에서 생긴 것이다. 국제적인 스타가 된 것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작곡된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한 1860년 대의 일이다. 1866년에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전쟁을 했는데, 불과 7주 만에 패하고 말았다. 독일 통일을 준비한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와 참모총장 몰트케의 탁월한 전략에 오스트리아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 패전의 결과 독일 연방 의장국이었던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한때 전 유럽을 호령하던 오스트리아로서는 정말 맥이 빠지는 일일이 나일 수 없었다.

  이렇게 패전 후에 우울함을 달래고자, 빈의 남성합창단에서는 쾌활하면서도 애국적인 곡을 공연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당대 최고의 대스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작곡을 의뢰하게 된다. 요한 슈트라우스도 동감했는지 선뜻 응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젖줄 도나우강을 노래한 한 시인(Jarl Beck)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란 곡을 작곡하기로 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기념상

  합창단에서 의뢰한 곡이었으므로 가사는 빈의 남성합창단의 시인(Joseph Weyl)이 곡에 맞추어 썼다. 남성 합창이 들어간 왈츠곡이 된 셈이다. 초연을 1867년 2월에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슈트라우스가 이런 결과가 마음에 찰 리 없었다.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슈트라우스가 공연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합창을 빼고 순수한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서 연주했다. 파리 박람회의 연주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그 후 이 곡은 오케스트라 버전 쪽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연주된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참석한 비엔나의 '뮤지컬 세레나데' 모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오스트리아를 상징하는 곡이 되었다. 유명한 빈 신년 음악회에서도 전통적으로 앙코르로 이 곡이 연주된다. 이 곡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브람스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브람스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부인을 만났다. 부인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자,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몇 마디를 그리고 '불행히도 브람스 작품이 아님'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왈츠의 왕인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는 으른바 빈 왈츠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는 단순한 3박자의 연속이 아니라 거기에는 환상을 불러 일으킬 만한 깊은 정서가 담겨 있고, 낭만의 꿈이 서려 있다.  따라서 작곡된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의 왈츠 대표작으로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황제 왈츠> <남국의 장미> <예술가의 생애> <술과 여인과 노래> 등이 있다.

  도나우강은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간직하고 유유히 흐르는 유서 깊은 강이다. 도나우의 흐름은 기쁨도 슬픔도 감싸주고 달래주며 빈의 벗이 되어왔다.  요한 스트라우스는 바로 이러한 도나우의 정서를 그 곡에다 담았던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 빈은 

하이든과 슈베르트가 소년시절 합창단으로 봉사했던 성 스테판 대성당의 아름다운 고딕식 건물 첨탑이 지금도 빈의 상징인 것처럼 우뚝 솟아 있고, 여러 차례 거친 파멸적인 대전화에도 불구하고 옛날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모짜르트가 지휘했던 극장이며, 베토벤이 거닐었던 골목길, 부람스가 즐겨 찾던 커피집이 그대로 남아 음악 애호가들의 마음을 야릇한 향수에 들뜨게 만드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조수미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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