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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사티 '음악의 일요일들'


                                      글 : 장석남 (시인)


  사티의 음악을 들으면 언제나 일요일 같다. 
  모처럼 화창한 겨울 하루, 마당에 서 있는 나무의 긴 그림자가 오지호의 그림처럼
  이편으로 건너와 처마를 거쳐 지붕에 이르는 동안의 그 시간을 묘사한 듯한 
  그의 음악은 그래서 혼자만의 젖어 있는 시선을 표시하고 안내한다. 

  커피를 한 잔 놓고,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한 권 손에 쥐고 앉는다. 
  어두워 가는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불빛이 돋아오는 창 밖 풍경은 내면으로부터 
  어떤 음악을 부르는데 그것이 바로 내게는 <세 개의 짐노페디와 피아노 작품> 
  (파스칼 로제 피아노, 데카)이란 앨범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주 들었다. 

  건너편의 성의 불빛과 말라버린 담쟁이 넝쿨들, 수척해 뵈는 십자가 아래의 빈 그네. 
  음악은 자꾸만 내면의 모퉁이 길을 걸어나온다. 
  사티의 음악은 모차르트와도 베토벤과도 다르다. 바그너와도 브람스와도 리스트와도 
  차이코프스키와도 다르다. 드뷔시와도 라벨과도 쇤베르크와도 다르다.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무슨 말일까. 
  인간의 창조 행위의 원초적 캔버스라고 해야 할까? 
  고독 위에 있는 그의 음악은 어느 누구와도 잘 닿지 않는 은자의 음악 같다. 

  그의 음악이 내 가슴속에 멈추었다가 피처럼 흐르는 것은 우선 거창하지 않고 
  소품이기 때문이다. 늘 혼자 있을 때만 들으라는 음악 같아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나보다 아흔 아홉 살이 더 많은 이 작곡가. 
  박명욱이 정리한 사티에 대한 문건에 의하면 실제로 사티 생전에 그의 집을 들어가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스스로 상아탑이라고 이름 붙인 파리 교외의 
  누추한 거리 중심에 있는 한 건물의 3층에 위치한 자신의 거처에서 그는 그 누구의 
  방문도 허용하지 않고 죽기 전까지 27년간을 혼자 고독하고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차비마저도 없어서 가끔 파리 시내까지 걸어서 나와야만 했다). 
  그의 사후에 들어가 본 그의 집에는 구석구석에 쳐진 거미줄과 고장난 피아노 뚜껑 
  밑에 감춰진 쓰레기들과 잡동사니들이 가득 메웠다고 한다. 

  이 현대 음악의 선구자로 존중된 20세기 음악계의 이단적 존재 에릭 사티의 내면을 
  관류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긍지와 자부 대신에 끔찍한 고독이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음악적 실험과 기행과 떠들썩한 스캔들로 점철된 그의 삶의 외적 
  드라마에 의해 가리워진 그의 내실은 저 무인지경의 황량한 섬과 다를 바 없었다. 

  일급의 예술가들이 그의 주위에서 명멸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추종했으나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는 해학과 조롱과 익살로 그 암울한 내부를 가리고 스스로 택한 
  가난과 고립 속에서 쓸쓸하게 살다 죽어갔다. 한때 몽마르트의 예술가들의 회합장소
  였던 카페의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작곡한 샹송들은 파리 대중음악에 크게 기여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그가 얼마나 해학적이고도 신비주의적 작곡가였는지는 그의 작품 제목들을 열거해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차가운 작품들> <한 마리 개를 위한 물렁물렁한 진짜 
  전주곡> <바싹 마른 태아> <성가신 과오> <지긋지긋한 고상한 왈츠> 등등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노시엔느>라니! 
  그뿐 아니라 그의 악보에는 통상적인 연주 표시 대신 "놀라움을 지니고"라든가 
  "이가 아픈 꾀꼬리 같이" 등의 말들이 씌어 있었다고 한다. 

  창 밖 나뭇가지에서 저녁 새가 운다. 눈이 너무 많이 와 먹을 것이 없는 모양이다. 
  눈이 녹으면서 떨어지던 낙숫물 소리도 다시 저녁이 되어 얼어붙었다. 
  일부는 고드름이 되었을 것이다. 새의 소리도 얼어붙을 것만 같다. 

  사티의 음악은 우리에게 백석이거나 김종삼의 시처럼 거창하지 않지만 깊이 울림을 
  주는 음악이다. 이 저녁을 사티라면 어떻게 악보로 번역해 음악으로 만들까. 그리고 
  어떻게 연주하라고 적어 넣었을까. 
  '휘어진 소나무 가지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이라고 적지는 않았을까?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는 1888년 그가 22세 때 쓴 초기 작품이다. 
  <짐노페디>는 고대 스파르타의 연중행사인 제전의 명칭으로, 나체의 젊은이
  들이 여러 날 동안 합창과 군무로 신을 찬양했던 행사였다. 사티는 이 고대제전의 
  춤추는 광경을 피아노 모음곡으로 재현해냈다. 그것은 몽상적인 취향이면서 
  동시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는 발상이기도 하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지만, 이 조용한 피아노 곡을 듣노라면 역설적이게도 
  사티만큼 침묵과 정적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작곡가가 드물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티의 음반으로는 프랑스 출신의 파스칼 로제가 연주한 것이 데카에서 나왔고, 
  필립스 음반으로는 라인버트 리우의 것이 있다. 구하기 쉽지 않은 음반 중에 
  알도 치콜리니가 연주한 이엠아이 음반과 신진인 파스칼 로제의 연주는 사티 
  음악의 맑고 깨끗한 음색을 자연스럽게 살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에릭 사티의《피아노를 위한 3개의 짐노페디》
Erik Satie / 3 Gymnopedies




No.1, Lent et douloureux (느리고 아픈)


No.2, Lent et triste (느리고 슬픈)


No.3, Lent et grave (느리고 무거운)





     20세기 음악계의 이단적 존재 에릭 사티 (Erik Satie, 1866~1925,
     프랑스). 사티는 기존 음악계가 쌓아놓은 신조나 미학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간 '세기말의 반항아'였다. 그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감정의 표출을 절제한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음악들을 써냈다. 괴팍한 아이디어와 신랄한 유머, 그리고 신비주의
     와 순수에 대한 이념이 그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냈다는 평
     을 듣는다. 시대를 초월한 대담한 수법과 혁신적인 사상은 미래파의
     출현을 예고해 주었고,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그가 22세때 1887년에 쓴 <짐노페디>는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유명한 곡으로, 처음엔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어 단순한 듯 들리나
     절제된 선율로 고대의 신비감에 젖어들게 한다. 몽환적이고 고적한 
     분위기로 이끌어 주면서 삶의 아픔과 고단함을 다독여 주는듯 하다.
     에릭 사티는 21세부터 몽마르트의 캬바레 <흑묘-검은 고양이>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면서 대표적인 피아노 3연작  <사라방드>(1887)
     와  <짐노페디>(1888),  <그노시엔느>(1890)를 작곡했다.



《e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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