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라운 악기 해금 _ 김 훈
글과 몸과 해금
해금은 놀라운 악기다. 해금의 음색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몸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국악기는 양악기에 비해 훨씬 더 진하게 연주자의 몸을 느끼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해금이 풍기는 육체의 질감은 가장 깊고 진하다. 해금의 음색이 매우 비논리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이 육체의 질감 때문일 것이다.
몇년 전, 진도에 놀러갔다가 진도 단골들의 시나위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 시나위 악사들 중에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해금의 생김새는 볼품없다. 네 가닥 줄에 대나무 통이 전부다. 그러나 그 음역과 표현력은 놀랍다. 거칠게 꺾이고 휘면서 섬세한 것들을 아우른다. 진도에서 본 시나위 악사는 왼손으로 해금의 세줄을 싸감아 쥐고 떡 주무르듯이 소리를 주물렀다. 소리를 손으로 주무르는 것이다! 그래서 해금의 소리는 그 소리를 주무르는 인간의 몸의 소리처럼 들린다. 몸이 겪어내는 온갖 시간감과 몸속에서 솟고 또 잦는 리듬이 그의 손바닥으로 퍼지고 그 손바닥이 소리를 주물러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소리를 주무를 때, 그의 손바닥에 와 닿는 떨림은 다시 그의 생명 속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해금을 켜는 시나위 악사를 바라보면서, 나는 나의 글이 해금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소리를 주무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난 복된가. 나는 해금 악사가 소리를 손바닥으로 반죽해내듯이 내 문장을 주물러낼 수가 없다. 그래서 글힘이 모두 빠진 날 나는 해금 연주를 듣는다. 작년에 좋은 해금 음반이 많이 나왔는데, 꼭 나를 위해서 만들어 준 음반 같다.
- 김훈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 2008> P.58 <글과 몸과 해금> 중에서
◇ 해금으로 연주하는 팝 뮤직 이어듣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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