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악기 해금 / 김 훈 작가와 김영교 시인(11회)의 글

by 이태식 posted Mar 1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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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악기 해금 _ 김 훈

글과 몸과 해금

해금은 놀라운 악기다. 해금의 음색은 그 악기를 연주하는 인간의 몸의 질감을 느끼게 한다.

모든 국악기는 양악기에 비해 훨씬 더 진하게 연주자의 몸을 느끼게 하지만, 그중에서도 해금이 풍기는 육체의 질감은 가장 깊고 진하다. 해금의 음색이 매우 비논리적으로 들리는 까닭은 이 육체의 질감 때문일 것이다.

몇년 전, 진도에 놀러갔다가 진도 단골들의 시나위를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 시나위 악사들 중에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해금의 생김새는 볼품없다. 네 가닥 줄에 대나무 통이 전부다.
그러나 그 음역과 표현력은 놀랍다. 거칠게 꺾이고 휘면서 섬세한 것들을 아우른다. 진도에서 본 시나위 악사는 왼손으로 해금의 세줄을 싸감아 쥐고 떡 주무르듯이 소리를 주물렀다. 소리를 손으로 주무르는 것이다! 그래서 해금의 소리는 그 소리를 주무르는 인간의 몸의 소리처럼 들린다. 몸이 겪어내는 온갖 시간감과 몸속에서 솟고 또 잦는 리듬이 그의 손바닥으로 퍼지고 그 손바닥이 소리를 주물러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소리를 주무를 때, 그의 손바닥에 와 닿는 떨림은 다시 그의 생명 속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해금을 켜는 시나위 악사를 바라보면서, 나는 나의 글이 해금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소리를 주무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난 복된가. 나는 해금 악사가 소리를 손바닥으로 반죽해내듯이 내 문장을 주물러낼 수가 없다. 그래서 글힘이 모두 빠진 날 나는 해금 연주를 듣는다. 작년에 좋은 해금 음반이 많이 나왔는데, 꼭 나를 위해서 만들어 준 음반 같다.

- 김훈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 2008> P.58 <글과 몸과 해금> 중에서



◇ 해금으로 연주하는 팝 뮤직 이어듣기 ◇







해금에 관한 다른 글 한 편을 더 읽어 보겠습니다.
미국에서 활약하는 여류시인인 부고 11회 김영교 후배님이
현지의 음악회에서 생애 처음 만난 경이로운 해금 감상의 글입니다.


해금을 만나다 _ 김영교

이조여인도 아닌 내가 푹 빠진 순서의 하나는 처음 만나는 해금 연주였다. 무겁고 답답한 가슴이 트이며 시원한 바람의 왕래를 경험하였다, 바로 음악에 있는 치유의 힘이었다. 품에 안긴 수줍은 해금, 참으로 귀엽고 작은 몸집이었다. 원래 해금은 두개의 줄을 문질러 마찰하여 소리를 내는 한국 전통악기 중 사부(絲部)에 속하는 찰현(擦絃)악기라고 한다.

해금은 대부분 내림조가 편안하고 수월하며 서양악기인 바이올린 종류 관현악과의 어울림을 통해 상대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아름답게 이어가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두 줄 밖에 없어 지극히 외소 해 보이는 현악기, 앉아서 무릎위에 올려놓아져 마찰에 온 몸을 내 맡기는 해금, 저토록 조그만 울림통에서 어떻게 저토록 음역이 넓고 이조(移調)가 쉬운 융통성을 장점으로 지닐 수 있을까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로부터 궁중음악으로 널리 쓰였다는 자료만 봐도 왜 총애를 받아왔는지 납득이 가는 악기였다.

그야말로 두 줄 밖에 없어 빈약해 보이는 현악기, 앉아서 무릎위에서 피가 터지도록 마찰해 내는 해금소리, 연주자는 대가다운 솜씨로 관현악과 어우르며 협주곡 '추상'(이경섭 작곡, 이용희 편곡)을 서정적으로 잘 뽑아 끌어올렸다. 낯설음으로 조심스레 다가와 산들 바람으로 들판을 휩쓸다가 산으로 올라가 나무들을 흔들기도 하고, 시원하고 경쾌하게 내닫는 솜씨로 냇물이 되어 감미롭게 흐르다가 넓게 빠르게 계곡을 흘러 잔잔한 햇살로 넓게 눈부시게 퍼져 관객의 가슴을 관통하면서 스트레스를 말끔히 내몰아 주었다.

작은 악기,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악기가 큰일을 해내는 기적을 보며 가슴이 찡한 감동으로 울려왔다. 처음 협연을 할 때 이곳 청소년들은 볼품없는 동양 악기를 얼마나 신기해하고 해금이 내는 커다란 울림에 얼마나 놀라워했을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낯선 동양악기 해금이 해낸 장한 일은 이곳 이민자처럼 세계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생명이 퍼덕대는 이민 광야에서 외롭게 힘든 음악의 길을 선택한 1세, 1.5세 2세에게 열린 기회, 아름다운 꿈과 힘을 보여주고도 남았다. 두 줄 뿐이라는 해금의 핸디캡은 바로 이민자들의 언어의 핸디캡, 문화의 핸디캡을 대변해주었다.

그 핸디캡을 딛고 주류사회라는 트롬본을 위시해 현악기군으로 편성된 서양악기와의 절묘한 조화,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은 청소년들에게는 도전이었을 터이고 혼신을 다해 쏟는 매혹적인 협연은 참여의식과 동질감의 좋은 체험이었을 것이다. 음악적 성장을 확고하게 세우는데 큰 기여했음은 부인할 수가 없어 긍지마져 느끼게 한 분위기였다.

가슴이 트이며 어깨의 긴장이 녹아버린 음악치료의 효과를 낸 해금을 만난 기쁨,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09.8.16, LA중앙일보에서)

- 김영교 (시인, 미국 LA 거주, 부고 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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