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입하(立夏, 5월 5일)가 지났는데 날씨는 벌써 한여름이다. 봄꽃들이 와르르 피어나고 서둘러 지더니 어느새 봄날은 속절없이 간다. 3~4월 한냉기류에 주춤하던 봄이 한걸음에 달려오다 숨가빠 자지러진 모양새다. 당신과 나의 애창곡 <봄날은 간다> 를 해마다 5월 중턱에 들어보곤 했지만 올 해는 더 일찍 만나 봐야 하겠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손로원 시, 박시춘 곡, 1953) //
이번에는 재즈가수 말로(Malo, 본명 정수월, 1972년 생)의 노래를 전제덕의 하모니카 협주로 들어본다. 긴 겨울 보내고 설렘 속에 맞이한 짧은 봄날은 아름답지만 아쉽고, 아쉬운만큼 야속하고 슬프다. 우리 모두 제 음색으로 '봄날은 간다'를 목 놓아 불러보자. 구모룡 님의 말대로, 슬픈 낙화의 아이러니로부터 무서운 희망을 찾으면서...!!
봄날은 간다 _ 말로 & 전제덕
몇년전 한 문학잡지가 한국문인의 애창곡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가운데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들이 비단 문인들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노래가 우리가 지닌 정조의 여러 측면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백설희 이후 배호, 문주란, 조용필, 심수봉, 한영애, 장사익 등 내노라하는 가인들이 이 노래를 변주하였다. 알뜰한 맹세가 실없는 기약이 되고 마침내 얄궂은 노래가 되듯 몰락하는 봄날에 바쳐진 이들의 곡조는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닌 슬픔의 존재감을 이끌어내기에 족하다.
봄날은 배신의 징표 / 가을에 지는 낙엽은 봄날 떨어지는 꽃잎 만큼 강렬할 수 없다. 낙엽이 자연스런 조락(凋落)으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그린다면 낙화는 비애에 젖게 한다. 물론 휘날리는 꽃잎들의 군무에서 환희를 느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봄날의 복잡한 심경은 개화와 낙화의 시공간 속에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우는 봄에서 편치 않는 마음을 갖는 것 같다. '봄날은 간다'를 애창곡으로 삼는데 그치지 않고 같은 제목의 시를 쓴 시인들 또한 여럿이다. "지상에 더 많은 천벌이 있어야겠다./봄날은 간다."로 끝맺음하고 있는 고은의 시를 위시하여 황동규, 김명인, 이승훈, 기형도, 안도현, 정일근, 이재무, 고재종, 조용미, 서상영, 허수경 등 허다하다. 개중 생동하는 봄을 예찬한 이 없지 않으나 대다수 오지 않는 사람이나 못다한 사연을 떠올리고, 간절하지 않은 안부와 내용 없는 추억과 시들한 사랑과 희망 없는 삶을 말하고 있다. 기형도가 "봄날이 가면 그뿐"이라고 할 때 정일근은 우리 모두 파장의 구경꾼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들 시인들에게 봄은 세계가 던지는 배신의 징표이자 이러한 세계에 대한 불화와 반목의 메시지이다. 매화 지고 목련 터지는 봄. 하지만 우리네 마음 속 봄날은 간다. 맹세가 티끌이 되고 먼지가 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퇴폐와 절망이 뒤엉킨 '봄날은 간다'가 여전히 애창곡의 수위를 유지할 것임에 의심이 가지 않는다. 더 많은 시인들이 변함없이 '봄날은 간다'를 노래할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인가? 그건 그렇지 않다. 우리가 슬픔을 노래할 때 기쁨은 그림자 처럼 슬그머니 기어든다. 마찬가지로 퇴폐로 이끌리는 감각에서 신생의 상상력이 싹튼다. 절망은 희망의 끝이기도 하지만 그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가 '봄날은 간다'를 변함없이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백설희에 연원(淵源)한 애상(哀傷)과 배호와 문주란에 가라앉아 있는 슬픔, 한영애에 깃든 퇴폐의 기미와 더불어 장사익에게서 울려나는 거부(拒否)의 몸짓을 우리는 모두 사랑한다. 이들을 통해 희망의 흔적들과 만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굳이 한(恨)의 미학을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봄날은 간다'를 애창하는 일을 억압된 정서의 분출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다양한 감성을 같은 유형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허무의 원칙 또한 방기(放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것을 무(無)로 환원시키는 것은 감성의 치안질서를 세우는 일처럼 독단적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음색으로 '봄날은 간다'를 목 놓아 부르자. 슬픈 낙화의 아이러니로부터 무서운 희망을 찾자.
- 구모룡(한국해양대 교수·문학평론가)의『봄날은 간다』중에서
벚꽃 지다 _ 말로 & 전제덕
'봄날은 간다'라는 詩는 노래를 부른 가수의 수보다 많다. 김용택 시인의 아래 詩는 제목은 달리 하지만, 오는 봄과 가는 봄의 얄궂은 정서를 기막히게 잘 휘갑쳐 보여준다. "봄에만, 죄가 꽃이 되지요" 같은 표현은 정말 절창이다.
그래요 _ 김용택
꽃이 피면 뭐 허답뎌 꽃이 지면 또 어쩐답뎌 꽃이 지 혼자 폈다가 진 사이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