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좌)과 <나비>가 수록된 앨범
슈만의〈나비〉강렬하면서도 감미로운…
작곡가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년)에게는 생애에 두 번의 큰 위기가 있었는데, 한 번은 음악이었고 한 번은 사랑이었다.
7세 때부터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에게 음악을 배운 슈만은 이어 작곡까지 하면서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그의 모친은 아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마땅치 않아 했지만 하이델베르크에서 슈만의 음악 지도를 했던 비크 박사의 설득으로 마침내 아들이 음악의 길을 가는 것을 허락한다.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 그의 12곡의 피아노 모음곡 ‘나비(Papillons)’다. 슈만의 피아노 음악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슈만이 20대 초반에 작곡한 것으로 그의 천재성과 독창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짧은 서곡과 1분 남짓한 12곡이 쉼 없이 13분 정도 연주되는 연작 피아노 작품.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대문호 장 폴 프리드리히 리히터(J. P. F. Richter, 1763~1825년)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리히터는 낭만주의의 선두주자답게 가면무도회나 달빛, 나비 무곡, 광대, 어린이 등 로맨틱한 소재들을 작품에 자주 등장시켰다. 이런 리히터의 소재들은 음악가 슈만에게 큰 영향을 미쳐 그의 가장 중요한 음악적 주제로 연결되곤 했다. ‘나비’ 역시 리히터의 미완성 장편소설인 ‘개구쟁이 시절’의 마지막 장인 63장 ‘애벌레의 춤’에서 비롯됐다.
12곡의 모음곡 중 1, 3, 4, 6, 8번 등 5곡은 1829년부터 1830년 사이 하이델베르크에서, 나머지 7곡은 1831년 라이프치히에서 작곡했다.
1년여의 간격이 생긴 것은 그에게 또 다른 변화가 있어서였는데, 183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조우한 니콜로 파가니니 때문이다. 파가니니의 불꽃같은 연주를 접하고 정신적, 문화적 충격에 빠진 슈만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바꾸고 싶은 강렬한 열망을 갖게 됐는데 그 열망이 후반부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나비’가 비르투오소(연주 기교)적인 화려함을 갖추게 된 배경이다.
화려한 1곡과 사랑스러운 7곡은 가면무도회장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마지막 12곡에서 무도회장의 왈츠와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하루가 끝남을 알리고, 이어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짧은 여운으로 끝을 맺는다. 슈만의 풍부한 상상력이 그가 존경하는 문학과 음악의 두 거장을 만나 그만의 독창성으로 꽃피운 것이다.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쳐가던 슈만은 뜻밖에 복병을 만난다. 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어야 했던 것. 게다가 하필 자신의 꿈을 열어 준 스승 비크 박사의 딸 클라라와 사랑을 하게 되는데 이 사랑은 스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 작곡가, 지휘자, 평론가로서 당대를 이끄는 음악적 리더가 된다. 또 스승 비크와 법정까지 가는 투쟁 끝에 클라라와의 결혼에도 성공한다. 인생의 큰 고비를 극복하고 스스로 부활한 것이다. 오늘날 슈만의 ‘나비’가 감미로우면서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 이 곡을 듣고 싶다면… ·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브람스&슈만, BBC · 리히테르(Sviatoslav Richter) in 이탈리아, EMI · 머레이 페라이어(Murray Perahia), 슈만, SonyMusic · 넬슨 프레이레(Nelson Freire), 슈만, Decca
[최영옥 음악평론가]
Robert Schumann's Papillons Op. 2 (Part 1) piano Wilhelm Kempff(1895-1991, Germany) (Filmed at the ORTF, Paris, February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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