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옥상에서 책들 앞에 촘촘히 서서 살다가 책 뒤질 때 와르르 방바닥에 내려꽂힌 CD들 아 슈베르트 얼굴이나 이름이 적힌 판들. 이 한세상 살며 그래도 마음에 새길 것은 슈베르트, 고흐와 함께 보낸 시간의 무늬들이라 생각하며 여태 견뎌왔는데. 껍질만 깨지지 않고 혹 속까지 상한 놈은 없는가 며칠 동안 깨진 슬픔을 하나씩 들어본다. 아니 슬픔이 아니라 슬픔마저 깨진 맑음이다. 이틀 만에 듣는 폴리니가 두드리는 마지막 소나타는 맑음이 소리의 물결을 군데군데 지워 몇번이나 건너뛰며 간신히 흘러간다. 뛸 때마다 마음이 금가려다 간신히 멈춘다. 슈베르트여, 몸 뒤척이지 말라. 가만히 둘러보면 인간은 기실 간신히 깨지지 않고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시방 같은 봄 저녁 황혼이 어둠에 막 몸 들이밀기 전 어느 일순 흘린 듯 흐려진 눈 아니고는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시인·1938-서울 생·서울대 명예교수)
슈베르트의 마지막 대작 피아노 소나타 3곡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가 죽기 2달전에 완성한 최후의 걸작은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였다. 19번(C단조 D. 958), 20번(A장조 D.959), 그리고 21번(B플랫장조 D.960)이다. 이 중에서도 마지막 곡 B플랫장조 제21번 D.960은 그의 예술적 영감을 열정적으로 담아낸 불멸의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슈베르트 사후에야 발표된 소나타 3곡은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베토벤을 닮고자 한 갈망을 뛰어넘어 '슈베르트적인 피아노 소나타'로 새롭게 고양된 눈부신 광채였다.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에 가려졌던 많은 기악곡과 오페라 등이 재조명되면서 슈베르트의 진가가 더욱 빛나고 있다. 더구나 걸출한 그의 작품들이 모두 31세 짧은 삶에서 잉태되었다니...!!
Schubert's Piano Sonata No.21, B flat major -Ⅰ
현존하는 정상급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Maurizio Pollini, 1942- Milan, Italy)는 바흐,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슈만, 브람스 등의 연주에 모두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71년 이래 음반의 명문 DG(Deutsche Grammophon)와 녹음을 많이 했다. 2012년 DG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