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베르트(왼쪽)와 ‘봄꿈’이 수록된 앨범(오른쪽)
마지막 꿈, 그래서 더 아름다운…
슈베르트의 ‘봄꿈’
그야말로 ‘쏘아놓은 화살’이란 표현이 요즘처럼 어울릴 때가 또 있을까? 봄이 왔는가 하니 여름인 듯하고, 여름이 온 것인가 체념하려니 또 봄이다. 언제가 봄이고, 어디가 여름인지, ‘꽃샘추위’가 맞는지, ‘꽃샘더위’가 맞는지.
온통 혼돈의 와중에서 대책 없이 시간은 흐른다. 심지어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은 피어나야 할 순서를 잊고 제각각 피어버렸다. 신기한 경험이다. 꽃들이 이러하니 나비나 벌들은 또 얼마나 헛갈릴 것인가? 당연히 사람도 혼란스럽다.
이쯤 되면 내가 나비인지 사람인지 도통 혼란스러웠던 ‘장자(莊子)의 꿈’이 떠오른다. 호접춘몽(胡蝶春夢). 그 꿈이 봄날의 꿈이라면 또 얼마나 달콤한 가운데였겠는가?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만해 한용운의 ‘춘몽(春夢)’이라는 시(詩)도 있다.
덧없는 일장춘몽을 200여년 전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도 간파했던 모양이다. 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Winterreise)’ 중 ‘Fruhlingstraum (봄꿈)’이 그것이다. ‘봄꿈’은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겨울여행’에 곡을 붙인 연가(戀歌)곡 중 11번째 곡이다. 달콤한 추억을 회상하면서도 문득 솟구치는 아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을 희망 등이 인상적이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에게도 한때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찬란한 봄의 꽃밭, 아름다운 소녀의 미소와 키스가. 꿈속의 여인은 또다시 떠났고 봄은 아직도 멀리 있다는 허망과 좌절. 그것을 다시 되새기는 청년의 아픔과 체념이 그야말로 절절하게, 그러나 한편 담담하게 다가오는 ‘봄꿈’.
작곡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아마 시인이 됐을 것 같은 슈베르트. 그만큼 시를 음악으로 완벽하게 승화시킨 작곡가였다. 노래를 단순한 노래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시와 음악을 결합한 ‘예술가곡’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정립했다.
슈베르트는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귀한 음악들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의 30여년 짧은 생은 너무 추웠고, 가혹했다.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삶은 그냥 무명(無名)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존경하는 괴테의 시를 가사로 작곡한 노래들이 정작 괴테로부터는 퇴짜를 맞기도 했다. 같은 음악가이며 선배인 베토벤을 평생 흠모하고 살았지만 그가 다가가기 전에 베토벤은 세상을 떠났다. 가난 때문에 첫사랑 그로프와 결혼하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슈베르트가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을 가기 시작한 건 15세 때부터다. 아버지는 자신이 운영하는 학교를 맡기를 바랐지만, 가난한 음악가의 길을 택했던 슈베르트. 가난과 질병,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900여개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슈베르티아드(슈베르트의 밤)’의 후원이 있기는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무명의 작곡가를 내내 보살피기엔 한계가 있었다.
겨우 31세 나이에 세상과 작별한 슈베르트. 자신이 존경한 베토벤이 죽은 이듬해인 1828년, 본인 희망대로 빈 중앙묘지 베토벤 무덤 옆에 매장됐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꾼 마지막 꿈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봄꿈’을 들으며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런 꿈이라도 있으면 계절이 역행하고, 바람은 차며, 현실은 녹록지 않은 이때, 그나마 좀 위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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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옥 음악평론가]
Schubert's Die Winterreise Op.89, D.911 중 Frühlingstraum(봄꿈) Dietrich Fischer-Dieskau (1925-2012, Germany), baritone Murray Perahia, piano / June 1990
Schubert's Die Winterreise Op.89, D.911 중 Frühlingstraum(봄꿈) Ian Bostridge (1964- England), tenor / Julius Drake,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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