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간 만남이 또 성과 없이 끝났다고 한다. 반성과 사과가 없는 나라, 심지어 최근엔 그릇된 역사관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면 착잡하다.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 감독의 이 영화의 원제는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다.
피노체트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죽음과 소녀’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 전반을 수놓던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와 같은 이름이라는 점은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다.
군사독재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도피한 제랄도 대신 잡혀 성고문을 당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 파올리나. 그녀는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에도 15년 전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정신분열과 대인공포증을 앓는다. 변호사인 남편 제랄도와의 결혼 생활은 겉보기와 달리 행복하지 못하다. 두 사람의 미묘한 갈등과 신경전 사이로, 어느 날 밤 끼어든 한 사람이 있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자동차가 고장 난 남편을 데려다 준 의사 미란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파올리나는 자신의 고문범임을 직감한다. 미란다는 파올리나를 고문하고 성폭행하면서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들려줬었다. ‘죽음과 소녀’ CD가 미란다의 차에서 발견되자 파올리나는 그가 범인임을 확신하고 미란다를 위협해 자백을 받아내려 한다. 하지만 남편 제랄도는 법과 인권을 내세워 파올리나를 가로막는다. 파올리나는 권총 위협과 고문에도 미란다가 사실을 잡아떼자 그냥 처형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순간 완강히 부인하던 미란다가 죄를 인정한다. 이에 파올리나 또한 미란다를 풀어준다. 파올리나가 원했던 것은 단 한 가지, 미란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울리는 음악 또한 ‘죽음과 소녀’. 상처와 복수, 용서라는 삼각구도에 이 음악은 모두 사용됐다.
왜 죽음이었을까? 죽음은 이 가난하고 외로운 작곡가에게 생애 전반에 걸친 끊임없는 구애였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인생을 비극으로 이어진 행로라고 생각했다. 그가 남긴 작품들 중 50여개에 달하는 곡이 ‘죽음’이라는 주제와 관련 깊다.
자신을 고문했던 악인을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죽음 역시 결코 초연해질 수 없는 비장한 현실이고. 하지만 진실을 밝힘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파올리나와 죽음의 공포를 ‘안식의 평화’로 받아들이는 슈베르트를 보면 마음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고통받는 파올리나에게 간절하게 필요했던 것은 복수가 아닌 진심 어린 사과였다는 점. 그것을 모르는 일본이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에 한동안 파올리나의 아픔이 동행했다면, 여기에 위안부들의 아픔이 더해질 것 같다. 제발 위안부 할머니들이 진실한 사과를 받고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 추천 음반 * (CD) 빈 콘체르트하우스 콰르텟, Spectrum Sound * (CD) 부슈 콰르텟, EMI
[최영옥 음악평론가]
Schubert's String Quartet in D minor d 810 "Death and The Mai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