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를 살면서 존경할 만한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저마다의 가치가 다르고 다양한 이념과 사상 속에서 좀처럼 그런 존재가 부각되기 어려운 요즘 프란체스코 교황은 우리 사회에 드문 인물이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을 본받겠다는 의미에서 교황명을 ‘프란체스코’로 정했다는 그.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프란체스코 교황을 위해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Deux Legendes)’ 중 첫 번째 곡인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연주했다.
성 프란체스코의 삶에 감복을 받았던 또 한 사람이 리스트다. 음악사상 가장 화려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의 삶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가 천부적인 재능으로 인한 불꽃 같은 삶을 산 시기였다면, 후반부의 삶은 수도사 리스트였다.
1862년 9월 리스트는 자신의 딸 블랜디(Blandine)가 출산 도중 사망하자 큰 충격에 빠진다. 간절히 결혼을 갈망하던 비트겐슈타인 공작 부인과의 비극적인 사랑이 파탄 난 지 얼마 되지 않던 때였다. 예술가로서 화려했지만, 지나친 여성 편력으로 찬사와 비난이 엇갈리는 양면의 삶을 살았던 리스트는 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삶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 리스트에게 비극으로 끝난 사랑과 딸의 죽음은 수도원 생활을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수도원에서 보낸 몇 해 동안 리스트는 작은 피아노를 방에 놓고 작곡했는데, 이 시기에 작곡한 작품 중 하나가 성자 프란체스코를 소재로 한 ‘두 개의 전설’이다.
성 프란체스코는 13세기 이탈리아 가톨릭 수사이자 설교자이다. 가톨릭, 성공회의 성인이며 축일은 10월 4일. 별칭은 하느님의 음유시인,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존경받고 있다. 어느 날 아시시 평원을 걷던 프란체스코가 새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강복(降福)한다.
“얘들아, 너희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하늘을 나는 자유와 풍족한 음식과 몇 겹의 옷까지 받지 않았느냐? 그분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세계에 전파하라.”
새들은 인사라도 하듯 고개를 숙인 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 곡은 약 8분의 연주 시간 동안 숲 속의 정경과 프란체스코의 설교, 프란체스코와 새들의 합창, 프란체스코의 마지막 당부와 떠나는 새들의 모습 등으로 구성됐다. 리스트는 새들의 소리를 상징하는 모티프에 대해서는 트레몰로, 아르페지오 등으로 현란하게 표현했다. 반면 프란체스코 성인은 여유롭고 진지한 화음인 단선율로 묘사했다.
수도복 자락으로 새들을 스치며 새들의 한가운데를 오가는 프란체스코. 그가 십자성호를 그어 새들을 축복하자, 기쁜 듯이 날개를 치며 사방으로 날아가는 새 떼들의 모습. 그것이 진지하면서도 열정적이고, 감동적으로 그려지는 곡이다.
이어지는 프란체스코 성자의 축복은 귓가에 맴돈다.
“그분은 당신의 창조물 중에서도 여러분을 특별히 귀하게 만드셨고…여러분이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여러분을 보살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