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는커녕, 전혀 예상치 못한 죽음을 대하는 건 언제나 충격적이다. 최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뮤지션을 보내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러시아 작곡가 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도 그런 아픈 경험이 있었다. 젊은 날의 그에게는 두 명의 특별한 친구가 있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화가인 빅토르 알렉산드로비치 하르트만과 하르트만을 소개한 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가 그들이다. 이들은 수시로 모여 예술과 삶에 대해 토론했고 조국 러시아의 앞날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데 이들의 우정과 열정을 한 번에 날려 버리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하르트만이 갑작스러운 동맥류 파열로 1873년 세상을 떠난 것. 그것도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두 친구는 말을 잃었고, 무소륵스키는 두문불출하며 슬픔에 빠져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성격의 무소륵스키가 우울증에 이를 정도로 슬픔에 함몰돼 있는 동안 스타소프는 너무 이른 나이에 떠나간 친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열리게 된 것이 하르트만의 추모전람회였다. 하르트만이 남긴 수채화나 데생, 유화 작품만이 아니라 건축설계 스케치나 보석, 생활용품, 무대배경, 의상 등의 디자인까지 포함된 모든 것을 모은 스타소프는 이들을 정리해 1874년 전람회를 연다. 그리고 이 자리에 무소륵스키를 초대했다.

처음 무소륵스키는 주저했다. 하지만 스타소프는 끈질기게 불러냈다. 마침내 전람회에 발을 내디딘 무소륵스키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친구의 꿈이 그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펼쳐졌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날 그들이 꿈꾸던 러시아의 영광을 떠올렸고 그 감동을 피아노 연작으로 담게 된다. 그의 걸작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이 탄생한 배경이다.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무소륵스키 특유의 독창성 때문이다. 고집불통이라 할 만큼 음악적 발상이 독창적인 것으로 유명했던 그는 의식적으로 과거와 동시대 작곡가들의 영향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음악 모델을 구축하려 했다. 특히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창조성이 뛰어난 작품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전람회의 그림’에서도 그의 남다른 독창성이 드러난다.

이 곡은 곡의 시작과 중간중간에 ‘프롬나드(Prome nade·산책)’가 도입된 최초의 ‘관람스타일’ 음악이다. 작곡가가 하르트만의 작품 사이를 거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프롬나드를 시작으로 난쟁이, 고성, 튈르리 궁전, 아이들이 놀이 뒤에 벌이는 싸움 등 10개의 곡이 이어진다. 모두 하르트만의 그림 10점을 곡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소륵스키는 이 곡을 만든 것으로도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르트만 역시 충분히 행복했을 것이다. 친구 덕분에 온 세상에 자신의 작품을 감상시켰고, 이는 그의 요절을 위로하는 최고의 선물이 됐을 테니까.

좋은 친구가, 나를 그대로 이해하는 친구가 왜 필요한지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나부터 잘해야 하리라. 사랑과 신뢰는 상대적으로 오가는 것일 테니….

▶ 감상을 원한다면…
    [CD]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DG
   [CD] 아쉬케나지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Decca

[최영옥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