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에 벌어진 숨 막히는 비극… 마스카니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by 허영옥 posted Mar 2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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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부활절이 되면 생각나는 곡이다.
사진은 작곡가 마스카니(왼쪽)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담긴 앨범 재킷 



부활절에 벌어진 숨 막히는 비극…
마스카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커피를 대단히 즐기는 연주자 한 분이 그 좋아하는 커피를 못 마셔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사순절 기간이란다. 크리스천이었던 모양이다. 절제를 위해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선택했고 부활절이 되면 그때부터 다시 마실 것이라는 얘기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리는 사순절과 부활절은 많은 예술작품에서 소재나 배경으로 쓰이곤 한다. 그중 가장 드라마틱한 것이 이탈리아 작곡가 마스카니의(Pietro Mascagni)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가 아닐까.

‘시골의 기사도(騎士道)’라는 뜻의 이 곡은 19세기 시칠리아 섬의 어느 촌락에서 얼마 전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투리두’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연인이었던 롤라는 돌아와 보니 마부 알피오의 아내가 돼 있었다. 배신감에 괴로워하는 투리두. 하지만 그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산투차가 있다. 그럼에도 투리두는 롤라를 잊지 못하고 알피오의 눈을 피해 그녀와 밀회를 즐기기에 이른다. 그를 바라보기만 하는 산투차는 괴로운 마음을 투리두의 어머니에게 하소연한다.

산투차의 귀띔을 통해 투리두와 롤라의 밀회를 알게 된 알피오. ‘복수(Vendetta)’를 외치며 알피오는 투리두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투리두는 알피오의 칼에 죽음을 맞는다. 산투차와 투리두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이 숨 막히는 비극이 부활절 미사 전후로 일어난다. 부활절 아침, 마을 교회 앞 광장에선 교회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은 “오렌지 꽃향기는 대기에 가득하고 새들은 꽃들 사이에서 노래하네. 지금은 모두가 부드러운 노래를 부를 계절”이라며 유명한 합창 ‘오렌지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고(Gli aranci olezzano)’를 부른다. 그렇게 즐거운 부활절 날 이런 비극이 일어날 줄이야.

마스카니가 27살이던 1890년 작곡한 단막 오페라인 이 작품은 G.베르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난한 피아노 교사였던 마스카니는 손초뇨(Sonzogno) 출판사가 주최한 단막 오페라 공모에 이 오페라를 출품할 생각이었지만, 작품을 완성해놓고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 출품하지 않았다. 그런데 현명한 그의 아내가 남편 몰래 출품한 이 작품이 당선되면서 마스카니는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명성과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이 작품에 ‘시골의 기사도’라는 뜻의 다소 의아한 제목을 붙인 것은 시칠리아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갈 대목이다. 시칠리아 섬은 유난히 고난이 많아서 그 어떤 지역보다도 지배계급에 심하게 수탈당하고 전쟁에 시달렸다. 그러다 보니 가난하고 거친 삶 속에서 가족주의가 강해져 가족의 불명예를 반드시 피로 갚는 ‘피의 복수’가 전통적으로 일반화된 고장이다.

귀족도 아닌 시골 남자들이 귀족 같은 기사도를 앞세워 어이없게 죽음을 맞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풍자하듯 표현한 것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리라. 부활절의 비극, 사랑과 질투, 욕망의 허망함. 그리고 부활절을 기다리며 커피를 참는 음악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올 부활절에 마시게 될 음악가의 커피는 특별히 향기로울 것 같기도 하고.

▶ 감상을 원한다면…
[CD] 칼라스, 스테파노, 세라핀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EMI
[CD] 모나코, 시미오나토, 모렐리 지휘, 도쿄 라디오 교향악단과 합창단, Gala

[최영옥 음악평론가]




Easter Hymn(부활절 합창)
sop Renata Scotto, mezzo Jean Kraft, bar Pablo Elvira
National Philharmonic Orchestra, cond James Levine



Gli aranci olezzano(오렌지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고)
National Philharmonic Orchestra, cond James Levine



Cavalleria Rusticana Intermezzo(간주곡)
Philharmonia Orchestra, cond Herbert von Karajan






Cavalleria Rusticana 전곡 듣기







sop Maria Callas & ten Giuseppe di Stefano 외
Coros/Orchestra del Teatro alla Scala, cond Tullio Sera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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