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세상 끝까지 영원한 것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고린도전서 13장 4~7절 -
작곡자 정두영 교수는 어떻게 이 곡을 쓰게 되었는가
교만한 탕자의 회개, 그리고 사랑의 노래
작곡자 고 정두영씨(1939-2005)는 1984년에 창단된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초대 상임지휘자로
서울대 음대에서 플루트를 전공했고 미국 맨해튼 음대와 피바디, 이스트먼 음악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음악과에서 한국인 최초의 종신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지인이 읽어주는 고린도전서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라는 구절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마음 속에서 노래가 나오는 대로 펜 가는 대로 15분여만에 다
완성했다”고 유고집에 적고 있다. 그가 이 노래를 짓게 된 사연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루었다는 자만심으로 그는 한없이 교만했다.
만족을 몰랐던 그는 술과 노름을 즐겼고 급기야 부인 한정강 교수(침례신학대학교)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부인이 짐꾸리기를 마쳤을 무렵 지인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역 시민회관에서 열리는 신유부흥집회에 정 교수 부부를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태권도를 하던 큰아이가 골수염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던 터라 부부는 저녁 집회에
참석해 보기로 했다.
말씀을 전하던 부흥회 강사는 사람들 속에서 정두영 부부의 아이에게 안수기도를 했다.
아이는 “아빠, 이제 다리가 안 아파요”라고 말하며 기적을 시인했다. 놀라워하며 그도
사람들을 따라 강단 위로 올라섰다. 강사는 정 교수에게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명령했다.
충격을 받은 정 교수가 손을 들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부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집회에 참석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도자와 함께 한인교회 목사가 심방왔다.
그때 말씀이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확확 달아오름을 느낀 정 교수는
그들이 떠난 후 방으로 들어가 15분만에 곡 하나를 완성했다.
그는 작곡을 하면서 이 곡은 필시 하나님께서 사용할 것이고 대중들에게 널리 들려주실
것이란 것을 느꼈다.
이후 정 교수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로서, 교육자로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다가 2005년 4월 22일 소천됐다. (인용 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팬플룻
《e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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