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남의 ‘기다리는 마음’은 유럽에서 가장 한국적인 가곡이라고 호평을 받았다. 사진은 작곡가 장일남과 ‘기다리는 마음’이 담긴 앨범(오른쪽)
장일남 ‘기다리는 마음’… 유럽 감동시킨 한국 색채 짙은 가곡
클래식 음악사를 훑다보면 ‘국민악파’라는 사조가 있다. 민족의식과 애국심이 발현된 음악이 출현한 시기를 가리킨다.
클래식 음악의 유입이 그리 길지 않아 아직 ‘한국적인 색채’를 지니지 못했던 우리에게도 이런 의식이 움트게 된 계기가 있었다. ‘비목’의 작곡가 장일남(1932∼2006년)이 유럽에서 가진 작품발표회 공연에서다. 당시 장일남과 공연 관계자들이 유럽 무대에 자신을 갖고 무대에 올린 곡이 가곡 ‘비목’이었다. ‘비목’은 이미 한국에서 예술가곡으로서는 드물게 돌풍을 일으키며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그 ‘비목’을 듣는 유럽인들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유럽인들이 ‘이것이다’라며 환호를 한 곡이 나오게 된다. 바로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우리의 창과 같은 이 노래를 들은 유럽인들은 이것이 바로 한국의 가곡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장일남을 비롯한 한국 작곡가들은 우리 것에 대한 깊은 고찰과 그것을 음악에 입히는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적인 것’이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에 등장하게 된 계기다.
‘기다리는 마음’은 장일남의 처녀작이다. 1951년 김민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바리톤 진용섭이 불렀고, ‘비목’의 작사가이자 PD였던 한명희가 자신이 진행하던 가곡 프로그램에 처음 소개했다.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장일남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인 황해도 해주를 떠나 월남해 연평도에서 1년쯤 머문 시절이 있다. 이때 한 문학청년을 만나 친해졌는데 어느 날 그가 전해 준 것이 옛 우리말로 된 헌책이었다. 책 속에 있던 어느 시가(詩歌)가 장일남의 마음을 끌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뭍으로 가서 사는 게 희망이던 제주도의 한 사내가 어렵사리 목포로 가게 된다. 그러나 막상 꿈을 이루고 나니 타향살이가 고달팠다. 제주도가 있을 성싶은 바다를 바라보며 두고 온 여인을 생각했다. 그 여인도 임이 올 것이란 기다림 속에서 제주도 일출봉에 올라, 간 곳을 모르는 사내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고향을 가까이 두고도 가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와 너무나 같았다는 장일남은 연평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 10여분 만에 노랫말에 곡을 붙였다. 가곡 ‘기다리는 마음’이 태어난 순간이다.
얼마 전 한국 영화계를 강타했던 ‘국제시장’에서 이제는 70대가 된 남자 주인공이 부산 산복도로(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에 있는 집 옥상에 앉아 부산항을 바라보며, “내 꿈은 선장이었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6·25전쟁 때 내려와 가족을 건사하느라 자신의 꿈은 늘 뒷전이었던 주인공의 한 많은 인생이 산복도로에서 회상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였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수많은 아픔과 눈물이 녹아 있는 곳이 산복도로기 때문이다.
그 산복도로 중간에 김민부전망대가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음의 애잔함을 그대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연인을 기다리고, 고향을 그리며, 또 평화를 기원하는 한국인의 마음처럼. 이 곡이 진정한 한국인의 노래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유럽인의 선택이 탁월했다 생각되는 이유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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