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이야기가 있다"

by 이태식 posted Aug 2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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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는 이야기가 있다

장 한 나

(첼리스트 겸 지휘자)

"음악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을 해야 하나요?"
"음악 속에 의미와 내용이 있나요?"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그럴 때 나는 "모든 음악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대답한다.

이야기에는 흔히 뚜렷한 주인공이 있고, 명확한 줄거리가 있다. 스토리 전개도 매우 논리적이다. 하지만 언어가 감정의 뜻을 포함한 의사소통 수단이라면, 오히려 음악은 감정 자체를 전달한다. 일반적인 이야기가 슬픈 상황을 만들어 듣는 이의 감정에 호소한다면, 음악은 이미 슬픔 그 자체를 전달한다.

음악 속 이야기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보통 이야기처럼 뚜렷한 내용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표현한 음악이다.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키호테`가 대표적인 예다.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명작 소설 `돈키호테`에서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 10개를 골라 작곡했다. 풍차를 공격하는 돈키호테의 무모한 용맹, 양떼를 대상으로 성취하는 승리, 돈키호테가 치명적인 공격을 받는 순간을 음악 속에서 정확히 들을 수 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내 안에 살고 있는 돈키호테를 발견하게 된다. 돈키호테가 정신을 차린 뒤 맞이하는 평화로운 죽음의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며 따뜻하다. 음악은 그 정도까지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온다.

둘째는 어느 특정한 장면이나 하나의 아이디어를 묘사하는 음악이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은 자연을 묘사했고,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은 작곡가가 상상한 옛 조상들의 봄맞이 제사를 표현했다. 쇤베르크가 데멜의 시를 읽고 작곡한 `정화된 밤`은 내용의 뚜렷한 묘사라기보다는 그 시가 전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소리로 그렸다. 또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친구 화가가 남긴 작품들을 하나씩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은 변하지 않는 한순간만을 영원히 묘사하지만, 음악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기에 그림 이전과 미래까지도 묘사한다. 달빛 아래 나누는 가슴 아픈 대화나 그림 속에서 만나는 오래된 낡은 성 밖에서 노래하는 시인은 음악을 통해 혼이 생기고, 소리가 살아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생생히 살아난다.

셋째는 작곡가만이 아는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다. 차이콥스키, 말러, 부르크너, 슈만, 베를리오즈 등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에는 이런 이야기가 DNA처럼 박혀 있다. 차이콥스키는 동성애를 끌어안고 살면서 정말 많이 힘들어 하고 괴로워했다. 그의 교향곡 4번부터 6번 `비창`까지는 마치 그의 일기와도 같은 작품들이다. 단순히 신나는 음악같이 들려도 그것이 정말 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작곡가가 당시 썼던 편지와 일기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래서 작곡가에 대해 조금 알게 된다면 그가 남긴 작품은 너무나도 새롭고 분명한 형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아무 내용이 없는 것 같은, 즉 `순수음악`이 있다. 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는 물론 모든 작곡가들이 순수음악을 작곡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남겼다. 우리가 언어로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로지 감정으로만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용을 모른다고 해서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곡가는 분명 음악을 통해 들려주고 전하는 것이 있다. 하나의 감정일 수도 있고, 숭고한 인간의 정신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같은 인간이기에 그 감정을 분명히 느낄 수밖에 없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다. 이렇게 다양한 음악의 속 내용을 자유롭게 느끼며 상상의 날개를 기르시기를 바란다. 음악은 언어가 터치하지 못하는 마음속 깊은 구석구석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매일경제 2012.8.18) 

장한나 (1982~경기도 수원) 3살때 피아노, 6살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 13살에 줄리어드 예비음대 특별장학생 입학.
1994년 14살때 로스트로포비치 첼로경연대회 최우수상 수상.
2001년 하버드대 철학과 입학. 2006년 영국 그라모폰지 선정
'내일의 클래식 수퍼스타 20인'에 선정. 2007년 성남아트센터
제1회 국제청소년관현악 축제에서 한-중-독 연합오케스트라 이끌고 지휘자 데뷔. 2012년 8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스승인 미샤 마이스키가 출연한 앱솔루트 클래식Ⅳ 공연 지휘.






장한나 첼로 연주 모음




** 이어 듣기 **
 
        01. 하이든…첼로 협주곡 1번 1악장
        02. 브루흐…콜 니드라이 
        03. 차이콥스키…녹턴
        04. 하이든…첼로 협주곡 2번 2악장 
        05. 김연준…비가 

        06. 생상스…백조 
        07. 포레…엘레지
        08. 생상스…첼로협주곡 1번 3악장 
        09. 프로코피예프…신포니아 콘체르탄테 3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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