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불상의 춤추는 모습 상상하며"
1974년에 나는 밤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냈다.
당시 쓰고 있던 곡 ‘침향무(沈香舞)’ 때문이었다. 신라 시대 불상이 춤추는 모습을 상상하며 쓴
곡이다. 신라인들과 내가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은 별빛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별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해 가을 처음으로 유럽 순회 연주를 초청받은 나는 유럽에서 초연할 획기적인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이화여대 교수로 막 부임한 해인 74년 봄 침향무를 만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전통음악’이라고 하는 건 대부분 조선 후기 음악에 한정돼 있다. 전통음악이라는 게
조선 말기 음악가들이 연주하던 걸 물려받아 연주하는 것에 지나지않는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당시 나의 또 한가지 고민은 새로운 것을 찾는 방법이었다.
작곡을 시작하면서 나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그러기 위해선 전통적인 틀을 부수어야 하지만 자칫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이러한 작품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통에만 머무르기는 더 싫었다.
그래서 찾아낸 해결책이 신라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더 옛날 것으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서양음악 역사에도 낭만주의 다음에 나온 작곡가들이
거꾸로 고전 내지 바로크로 들어가면서 전통의 벽을 넘은 사례가 있었다.
나는 신라인에게서 춤곡을 위촉받았다고 상상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가치를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부처의 상, 특히 반가사유상이 떠올랐다. 문제는 이 상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음악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고심 끝에 불상이 춤추며 움직이는 모습을 생각해 내게 됐다.
거기에 맞는 음악을 상상하며 침향무를 썼고, 생각보다 훨씬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켰다.
침향(沈香)은 인도의 향 이름이다. 이 향은 동양에서 가장 고귀한 향기로 꼽힌다.
비단길을 통해 신라로 들어온 서역의 문화를 상상했다. 그래서 침향곡에는 이국적인 새로운 가야금 주법이
여럿 나온다. 장구반주도 전통적으로는 왼쪽과 오른쪽의 가죽만 치지만 침향무에서는
가운데의 나무통도 치고, 또 채를 내려놓은 손가락으로 장구를 연주한다.
침향무를 74년 유럽에서 초연했는데 이듬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표하자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이 곡은 차츰 가야금 연주자들이 국내외에서 가장 빈번히 연주하는 곡의 하나가 되었다.
중고생들이 국악 콩쿠르에서도 연주하고, 국립국악원은 해외 공연 때 단골 레퍼토리로 삼았다.
심지어 연주회프로그램에 작곡가 이름이 빠진 채 곡명만 실리는 바람에 아예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통곡인
줄 아는 사람까지 있다. [중앙일보 연재 '남기고 싶은 이야기' - '오동 천년, 탄금 50년' 중에서 인용함]
황병기(黃秉冀, 1936년 5월 31일 생)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가야금 연주자이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한 뒤로 가야금을 배워 단국대학교 명예음악박사가 되었다.
소설가 한말숙과 결혼해 살고 있다. 2005년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 《침향무(沈香舞)》(1974)가 있다.
현대음악 기법으로 쓰여진 《미궁》(1975)은 2000년대 초반에
‘세 번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와 함께 퍼져서 ‘무서운 곡’으로 유명해졌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구현하고 해외에도 알리려는 사명감과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