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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row by Van Gogh (1882)



헨리크 고레츠키 교향곡 제3번 "슬픔의 노래"

Henryk Mikolaj Gorecki

The Symphony of  Sorrowful Songs
for Soprano and Orchestra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
Kazimierz Kord, cond
Joanna Kozlowska, Soprano



1. Lento - Cantabile - Semplice


2. Lento - Sostenuto Tranquillo ma Cantabile


3. Lento E Largo - Tranquillissimo




Henryk Mikolaj Gorecki, 1930- Poland


"비통해야 하는데… 이 황홀경은 뭐지"

‘극치의 쾌감’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설마 엊저녁에 얻어먹은 한우 등심구이 맛 정도를 떠올릴 리는 없고…. 두말할 것 없다. 암사슴 수사슴 간의 끈적끈적한 상열지사 한판을 떠올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쾌감의 소재가 때론 엉뚱한 곳, 불경한 감흥에서도 찾아온다. 쾌감을 느끼는 것이 불경스러운, 그런 경우가 있다.

폴란드 출신 현대음악 작곡가로 펜데레츠키, 루토스와프스키, 헨리크 고레츠키 세 사람이 우뚝하다(감상하기 어지러운 순서다). 펜데레츠키는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로 큰 명성을 얻었고, 루토스와프스키는 뛰어난 교향곡·협주곡들도 남겼지만 공산체제 붕괴 과정에서 보인 비타협적 행동으로 같은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못지않은 존경을 누린 인물이다.  문제는 헨리크 고레츠키인데 다음의 기록을 보자.  미국 빌보드 차트 클래식 부문 31주 연속 1위, 75주간 차트 등재. 영국 베스트 음반 차트에서 팝록을 포함한 모든 장르에서 전체 6위. 단기간에 음반판매 100만 장, 한국에서도 3만5000장 판매.  모두 1990년대 초반의 야단스러운 기록인데 현대음악 사상 전무후무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른바 ‘고레츠키 신드롬’을 낳은 그 음반은 데이비드 진먼 지휘로 소프라노 돈 업쇼가 성악파트를 맡은 교향곡 제3번 ‘슬픔의 노래’다.  1976년 작품이니 신곡도 아니고 신드롬이 벌어진 91년에서 93년 사이 영미권에 특별히 더 슬픈 사건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들 ‘이게 웬일이지?’ 했건만 그 이유를 찾을 길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느닷없이 까닭 모르게 ‘슬프고 싶어라!’ 했나 보다.  예술작품을 의미의 구성물로 받아들이는지 직관적 정서 반응으로 느끼는지는 꽤 까다로운 논제다.  그렇지만 고레츠키의 ‘슬픔의 노래(작은 사진)’는 명확히 의미가 앞서는 교향곡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폴란드인에게 바치는 애가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노래’에는 소프라노 독창이 세 차례 등장한다.  첫 곡은 15세기 수도원에서 불린 ‘애통의 노래’,  2악장 두 번째 노래는 게슈타포 본부 지하 감방 벽면에 칼로 새겨진 18세 수감자 소녀의 애절한 기도문,  끝 곡은 중세 폴란드 지방 민요를 담았는데 그 가사를 일부 옮겨보자.  ‘사랑하는 아들아, 어디 갔느냐?  잔인한 적들이 너를 죽였겠지.  너, 나쁜 인간들아, 말해 보거라.  왜 내 아들을 죽였느냐?’  이처럼 교향곡 ‘슬픔의 노래’는 비통한 노랫말,  무겁고 느린 진행,  대재앙의 학살극이 불러일으키는 분노와 죄의식 등으로 옷깃을 여미고 듣는 작품이다.  그 시절 대세였던 마이클 잭슨의 뒷걸음 치는 문워크,  마돈나의 야한 란제리룩  따위와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는 분위기라는 뜻이다.

‘슬픔의 노래’는 우리에게 소설로도 다가왔다.  정찬의 동명 중편이 그것인데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광주’ 당시 진압군 위치에서 학살을 자행해야 했던 청년이 폴란드에서 연극을 하며 그 기억의 고통을 삭이는 내용이다.  소설 주인공이 실제로 고레츠키를 찾아가는데 노경의 작곡가가 이런 말을 들려준다.  ‘슬픔의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강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강이 있음을 일깨우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이다.’  음악 못지않게 소설 역시 매우 무겁고 침중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 괴이한 신드롬,  대중적 인기가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책이든 음반이든 존경심으로 팔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임계점을 넘어 버린 판매량과 끝없는 방송 리퀘스트가 설명되지 않는다.  대중의 문화적 허세가 아닌 실제적 감상물로 소비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왜 너도나도 ‘슬픔의 노래’  음반을 샀던가.  언젠가 그걸 나는 매우 생뚱맞은 각도에서 이해하게 됐다.  건축가 친구 ‘간디’가 놀러와  ‘그 곡 참 멋지더라’ 하면서 들려달란다.  나치학살,  광주비극과 결합된 묵지근한 곡을 두고 ‘웬 멋?’ 하는 기분으로 음반을 걸었다가 중간쯤에 아, 하는 영탄을 부지불식간에 토해냈다.  의미를 벗어난 사운드 자체의 강렬한 중독성을 체감한 것이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중한 저음부 합주로 느리게 진행된다.  렌토-아주 느리게 표시가 전 악장에 걸쳐져 있다.  중간중간 바이올린 파트가 강조되는 대목도 있지만 콘트라베이스의 무거운 사운드가 전체를 압도한다.  반복 또 반복의 악절은 절묘한 아티큘레이션으로 강조되면서 조금씩 변용되어 나간다.  그리고 온몸을 섬뜩하게 만들며 등장하는 소프라노의 귀기 어린 음색.  ‘슬픔의 노래’는 점층적으로 점점 세게 리스너를 어떤 황홀경, 최면상태에 가까운 엑스터시로 몰고 가는 힘이 있다.  그걸 극치의 사운드 쾌감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숱한 사람들이 같은 체험을 했을 텐데 어찌 불경스럽게 그 무거운 슬픔의 의미 앞에서 ‘쾌감’ 운운할 수 있겠는가.  나는 고레츠키 신드롬의 숨은 이유가 여기 있으려니 짐작해 본다.  우울한 이 계절에 심중한 곡의 의미를 벗어 던지고 소리의 황홀경에 푹 빠질 만한 곡이다.  ▲ 글쓴이  김갑수 (시인ㆍ문화평론가)






《e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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