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萬里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人跡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이 시는 詩 編輯 "주머니 속의 詩"(黃東奎, 鄭玄宗 編)에 수록되어 있다.
이 詩 編輯이 1977년에 출판되었으니 이 책에 실린 시들은 그 전에 발표된 것이리라.
우리 세대의 시인들이 젊은 시절에 쓴 시들이 마음에 더 깊게 와 닿는 것은
나를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서일까, 아니면 그들이 전하는 정서가 지금의
나에게도 더 친숙해서일까. 아무튼, 시는 마음을 달래주는 약이다.
Franz Schubert: Fantasy for Piano in f minor, Four Hands D. 940 (Op. 103)
Sviatoslav Richter & Benjamin Britten (피아노) 1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