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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8 12:16

겨울 사랑 / 고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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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사랑 / 고정희

    그 한 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 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 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 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 번의 이슥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시집『아름다운 사람 하나』(1990)


겨울사랑 詩 해설;
지금은 퇴출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식의 통속하고 니글거리기 짝이 없는 질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심심하던 시절의 '미팅'에선 어떤 계절을 좋아하냐는 간지러운 문답도 흔히 주고받았다. 지금도 순진무구한 학생들 사이엔 소품종으로 수줍게 유통되고는 있다. 그 대꾸에 따라 혈액형과 함께 그 사람의 성격을 대충 간본다든지, 자신과의 주파수를 맞춰보고는 했다.

그때 겨울이 좋다고 하면 순결하고 이성적인 이미지가 덧쒸워진 도도한 낭만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계절간의 어떤 계량과 선호 조건의 면밀한 비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두 가지 평범한 이유에 이끌려 즉흥적으로 내뱉는 경우가 많았다. 그저 느낌이 좋은 순백의 강하물 때문에, 혹은 긴 방학이 있어서, 성탄절의 해방공간이 주는 매력, 그리고 겨울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겨울의 가장 깊은 매력은 그 차가움으로 뜨겁게 사랑을 촉진시킨다는 데 있지 않을까. 고정희 시인과는 성만 다른 문정희 시인도 '겨울사랑'에서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양된 격정은 고정희 시인의 ‘겨울 사랑’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확실히 겨울은 그 '따뜻한 감촉'으로 인하여 커피의 맛은 깊어지고 라면과 김치찌개도 훨씬 맛있어진다. 그리고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난해한 말이 있듯이 겨울밤은 사랑의 역사가 무르익기 딱 좋은 계절이다. 고슴도치의 겨울나기 방식으로 연인은 가급적 밀착, 밀착 또 밀착이다. 이 겨울은 연인들 사이의 거리를 물리적으로 좁혀준다.

이십대를 고스란히 통행금지 제도에 묶여 보내야 했던 겨울 밤. 유일하게 성탄전야와 한 해를 갈아치우는 날에만 사슬이 풀렸다. 넘쳐나는 명동의 인파, 그리고 광복동과 동성로와 충장로는 젊은이와 나이든 이가 함께 점령한 거대한 주둔지였다. 고성과 교성 뜨거운 홍소, 그럴 때 눈이라도 내리면 혼자라는 것은 죄악이고 수치였다. 하지만 사랑이 뜨거워지면 별사를 완성하고 노래 부르기에도 마침맞은 계절 또한 겨울이다.

누구에겐들 이 겨울, 눈이 쌓이고 녹는 동안 더운 사랑과 아린 이별의 추억이 감긴 한 롤의 필름이 없겠으랴. 고정희 시인도 못 잊을 사랑 하나 품고서 몇 번의 겨울을 버티며 온 생을 떠받들었다고 하니 '이슥한 진실'의 더운 사랑 하나는 가졌나 보다. 지상에 없는 그녀는 지금 '치자꽃 향기 푸르게 범람하는' 어느 별에서 이 겨울과 입맞춤할는지.

권순진(시인)



The Blue Danube Waltz - New Year's Concert Vienna Philharmonic 2018


겨울사진 : 사진작가 - 연봉모;;:::::::::: 겨울사랑 시 : 고정희,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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