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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위기 / 이상우



건국 70년을 맞는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대한민국 국민은 역사상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국민의 나라, 민주공화국을 세우고 반(半)세기 만에 앞선 민주주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키워냈다. 또한 한국 국민은 세계 최빈국이던 나라를 세계 모든 나라 사람이 감탄하는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뤄낸 국민은 한국 국민 외에는 없다.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대한민국 70년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해 있다. 국가 존립 여하가 결정되는 마지막 고비에 있다.

왜 이런 위기가 왔는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또는 대한제국이 망할 때와 거의 똑같아 보인다.

한 나라가 처음 시작될 때에는 참신한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한동안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잘나간다. 여기서 정치제도는 지배적 가치, 즉 공동체 정신과 이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다가 세월이 가면 정신이 죽는다. 정신이 죽고 제도만 남는다. 정신에서 분리된 제도는 문제가 생긴다. 제도가 착취의 수단으로 타락하고, 부정부패의 수단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라는 쇠퇴하다가 결국 망하게 된다.

이 사이클이 옛날 농경시대에는 대략 200~240년이었다. 중국 역대 왕조의 수명이 대개 이 정도였다. 이때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경장(更張)’을 해야 한다. 좋은 활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쏘려 하면 줄을 새로 팽팽히 당겨 묶어야 한다. 이것이 경장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쯤 전인 1580년에 율곡 선생은 “지금 경장을 하지 못하면 나라가 흙담이 허물어지듯 허물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조선은 거의 망할 뻔했다. 거기서 다시 200년 존속하다가 결국 대한제국은 망했다. 제도는 그대로인데 타락한 정신을 다잡지 못하고 자멸(自滅)한 것이다.

요새는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으로 그 사이클이 3분의 1, 즉 70년으로 줄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사이클의 끝에 와 있는 셈이다.

지금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도 자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똘똘 뭉쳐 있으면 이 위기를 충분히 이겨나갈 수 있다. 그런데 국회도, 정당도 자기 이익이 우선이다. 나랏일은 뒷전이다. 행정부도,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가망이 없어 보인다.

위기의 진짜 핵심은 북한

우리에게 북한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그래도 버텨갈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있기 때문에 그러기도 어렵다. 지금 우리는 북한이 전개하고 있는 정치전(政治戰)에 허물어지고 있다. 핵보다 무서운 게 북한의 정치전이다. 위기의 진짜 핵심은 북한이다.

북한은 4•19 후 남한을 적화(赤化)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통탄했다. 북한은 그 원인을 남한 내에 혁명의 ‘주력군(主力軍)’을 만들어 놓지 못한 데서 찾았다. 북한이 1964년 2월 노동당 제4기 8차 전원회의에서 남조선해방전략을 채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북한은 지금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남조선해방전략은 한마디로 레닌 전략이다. 레닌 전략은 ;
▲전략목표 수립
▲주력군 구성
▲보조군(補助軍) 구성
▲공격의 주공(主攻)방향 설정
▲힘의 배분계획 설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주력군 구성이란 지하당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 곁에 보조군으로 노동자, 학생을 붙인다. 이것이 통일전선전술이다. 그래서 만든 것이 통일혁명당이다. 통일혁명당을 만든 이문규는 당시 공군본부 정훈감실에 근무하던 현역 장교였다. 그는 군 복무 중에 북한을 두 번 다녀왔고, 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만큼 우리가 허술했다.

주력군은 통혁당 사건 후 잠복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많은 보조군을 만들어 놓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나는 그를 만난 자리에서 “각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북한의 정치전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그 문제를 알고 있었다. 정보기관의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그는 “(정보기관에서는) 지하조직원을 250만명, 조총련을 통해 들어오는 공작금은 200만 달러 정도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결국 북한의 정치전을 막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김일성, 민주화 이후 “이제 서울이 전선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김일성은 “이제는 전략을 달리해야 한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이제부터는 남조선과 대치하는 전선(戰線)은 휴전선이 아니라 서울”이라면서 “주력을 서울에 붙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결정적 요소로 조직지원, 정치자금, 정책조율 세 가지를 꼽았다. 조직지원을 위해 지하조직이 여러 가지 형태로 움직였다. 정치자금은 처음에는 조총련을 통해 들어오는 공작금을 활용했다. 그게 여의치 못하게 된 후에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관광 등을 통해 들어온 자금이 사용됐다. 우리 돈으로 북한이 공작을 해온 셈이다. ‘북풍(北風)’이란 실은 북한이 자기편을 지원하기 위해 그때그때 정책조율을 해주는 것이었다.

북한은 3단계 집권전략을 세웠다. 1단계는 완전히 자기들 편은 아니지만 자기들에게 상당히 동조적인 사람, 대통령을 꼭 하고 싶어 하는데 할 수 없는 사람을 지원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면 50%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됐을 때 국가보안법 폐지 등 활동조건을 개선하고, 좋아진 환경을 활용해서 5년 후에 보다 친북적(親北的)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 제2단계였다. 여기까지 오면 75%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 좋아진 환경에서 3단계로 친북정권을 세우면 (적화)통일이 되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전략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국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은 북한의 그런 정치전을 막아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2017년 말 이후에 벌어진 사태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혁명과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막아야 할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검찰, 언론, 군 등을 장악하거나 무력화(無力化)하기 위한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대한민국’을 없애고 ‘저네들의 대한민국’ 만들기 위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여기서 끊길 위기에 놓였고, ‘저네들의 대한민국’이 승기를 잡고 있다. 문제는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50% 가까이 된다는 점이다.

등가(等價)참여 민주주의의 한계
왜 이렇게 됐을까? 등가(等價)참여 민주주의(제퍼슨식 민주주의)가 한계에 왔기 때문이다. 제퍼슨식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한다. 여기에는 나라가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사람도 있고,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사람도 있다. 이런 민주주의는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양심이 없으면 포퓰리즘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남미는 페론주의에서 보듯 포퓰리즘으로 갔는데, 미국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인들에게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시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6•25 당시처럼 고생하던 시절에는 단합이 됐었다. 공산당에 당했기 때문에 반공(反共)의식도 강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에도 사실 독재정치에 대해 큰 반대는 없었다. 새마을운동의 경우 모든 국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먹고사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경제발전의 결과 잘살게 되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게 됐다. “왜 네가 더 먹느냐?”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서로 싸우게 되더라도 일본처럼 혼자면 싸우다가 안에서 해결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밖에서 부추기는 북한이 있다. 북한의 정치전에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북한의 정치전이 우리로서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국력에서는 우리와 상대도 안 되는 북한이 왜 정치전에서는 이기고 있는가? 레닌 전략을 보면 철저히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손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기는 것은 상대방에게 달려 있고 내가 지는 것은 내게 달려 있다”고도 말했다. 상대방이 이길 수 없도록 문을 닫아 놓고, 적에게 뛰어들어서 상대가 지게 만들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북한이 그렇게 하고 있다. 세상이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딱 닫아걸어 주민들이 숨도 못 쉬게 해놓고 개방되어 있는 우리 쪽에서 정치전을 벌여 자기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왔다. 북한 통치자들은 주민들에게 “참으라. 산업화할 필요 없다”고 해왔다. 우리가 산업화로 이룬 것들은 통일되면 다 자기들 것이니까 그때까지만 ‘고난의 행군’을 하자는 것이었다. 2400만명 가운데 300만명만 있으면 된다는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등가참여 민주주의를 채택한 우리와는 달리 북한이나 중국은 현능주의(賢能主義•meritocracy)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는 표만 얻으면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할 수 있다. 북한이나 중국은 노멘클라투라(Nomenclatura)라고 해서 차례대로 추려 올라간 이들이 통치를 한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 중앙위원급만 되면 아무나 눈감고 뽑아 써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사람이다.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뽑아 놓았다. 이것은 북한•중국 체제의 장점이다.

북한은 전체적으로는 우리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뒤처져 있지만, 고르고 고른 엘리트들을 중심에 모아 놓았다. 우리는 유능한 인재들은 민간기업 등에서 뽑아가고 그 나머지가 정치와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은 중심이 뭉쳐 있다면, 우리는 도넛처럼 중심이 비어 있다.

남북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수십 년 동안 남북대화에 종사했던 이들이 나오지만,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담당자들이 바뀐다. 축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국력은 우리가 우위더라도 정치전에서는 북한에 밀리는 것이다. 특히 정신(spirit)에서 지고 있다.

중국의 사드 압박은 자기들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
국내적으로는 북한의 ‘정치전’으로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혜로운 대응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는 국내 정치의 혼란이 겹치면 국가 존립이 위협받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를 맞게 된다.

지난 1년 동안 중국은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한국을 압박해 왔다. 사드는 군사문제가 아니다. 사드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중국도 잘 알고 있다. 사드가 한국이 북한 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수용한 방어무기체계인 것도 잘 안다. 그런데도 사드가 가지는 상징성, 즉 한국과 미국의 군사동맹의 상징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한국에 사드 제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사드 문제를 가지고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한마디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끊고 자기들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중국천하 복원의 꿈(중국몽•中國夢)’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은 이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절이던 2013년 6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에 합의하는 성과를 얻었다.

‘신형대국관계’란 ‘중국천하’를 구축하기까지의 과도적 조치로,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원칙적으로 존중하되 중국이 옛날 지배하던 아시아 지역에 대한 중국의 주도권을 미국이 인정하라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핵심 이익은 상호 존중하고 국제질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서로 협력”하기로 한 이 합의 이후, 중국은 과거의 조공국(朝貢國)들을 하나로 묶는 일대일로(一帶一路)협력체제를 추진하는 한편 중국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9단선(九段線) 안에 들어오는 남중국해를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선언하였다.

북한은 외성화(外省化), 한국은 핀란드화

지리적으로 중국의 중심과 연결되어 있는 예민한 지역이고 역사적으로 중국이 오랫동안 종주권을 행사하던 지역이어서 한반도는 중국 지도자들의 머릿속 그림에는 이미 외국이 아닌 존재로 그려져 있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는 과거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어떤 중국 지방당(黨) 간부의 방에서 랴오둥(遼東)반도와 산둥(山東)반도, 조선반도(한반도)를 하나로 묶는 ‘3반도 발전 계획’이라는 문건과 한반도를 대만, 연해주 등과 함께 ‘중국이 수복해야 할 땅’으로 표시해 놓은 지도를 본 적이 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지금, 중국은 북한을 네이멍구, 신장-웨이우얼, 시장(티베트)자치구처럼 외성화(外省化)하고, 한국은 핀란드화(Finlandization)하려 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지난 70년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중국의 영향 아래 있어 왔다. 6•25 때는 중국이 100만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궤멸 직전의 북한을 구해줬다. 북한의 인구 2500만명은 산둥성의 4분의 1, 쓰촨성의 5분의 1 정도이고, 중국에서 1년에 증가하는 인구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에 중국과 이념을 달리하면서 ‘작은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은 ‘핀란드’화하려 할 것이다. 옛 소련이 이웃한 핀란드를 ‘반소(反蘇)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주권국’으로 묶어 두었던 것과 같이 한국을 반중(反中)행위를 할 수 없는 실질적인 속국(屬國)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한미동맹을 파기하게 하고, 미군을 철수시키고,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에서만 한국의 자주권을 용인해 주겠다는 것이다. 한국을 미국의 동맹체제에서 떼어내 중국의 종주권을 수용하는 ‘신형속국(新型屬國)’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현 정부 아래서는 그런 자신들의 뜻을 실현할 수도 있다고 보고,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 pressing)’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MD)체계에 가입하지 않고, 사드 추가 배치는 검토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는 발전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을 ‘3불(不) 약속’이라고 표현하면서 그 이행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북핵 위협의 뿌리는 중국

중국은 앞으로도 북한을 앞세워 한국을 압박해 나갈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도 계속될 것이다. 북한 핵은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핵 위협의 뿌리는 중국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아무리 경제제재를 강화해도 중국이 뒤에서 북한을 지원하는 한 그 제재로는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다. 중국이 북한을 보호하는 한 군사적 제재도 어려워진다. 결국 북한 핵 위협이란 중국의 ‘간접위협’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현재 과감하게 미국•한국•일본에 군사도발을 하고 있는 것도 중국의 비호가 있기 때문이다. 뿌리를 놓아두고 가지만 잘라내서 될 일이 아니다. 북한 핵 위협 문제, 나아가 통일문제 등의 당사자는 결국 평양이 아니라 베이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우리는 ‘핀란드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핀란드화’는 단순히 우리가 외교•안보 부문에서만 중국에 굴종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속국’은 ‘종주국’의 가치(價値)를 받아들이고 그 체제를 닮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리는 정치적 자유, 언론의 자유 등도 결국은 침식(侵蝕)당할 것이다. ‘핀란드화’는 지난 70년간 계속되어 왔던 우리의 삶의 방식, 문명의 기초를 바꾸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존중하는 자주적 주권국가로 남기 위해서는 이념을 같이하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미국의 힘을 빌려 중국의 ‘핀란드화’ 계획을 막는 수밖에 없다.

미국 역시 대한민국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이 대한민국의 건국을 후견했었고, 한국이 ‘번영하는 민주국가’로 발전하도록 도와왔던 오래된 군사동맹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선사업을 하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에 필요한 한국이 되어야 미국도 우리를 돕는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내게 ‘미국이 동맹을 선택하는 4가지 기준’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동맹의 조건

첫째, 이념적 상응성(相應性)이다.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앞세우는 나라로 남아 있어야 미국은 한국을 동맹으로 받아줄 수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면 미국 국민들이 정부가 한국을 동맹으로 삼지 못하게 할 것이다.

둘째, 전략적 중요성이다. 미국은 일본과 힘을 합쳐 중국의 진출을 막아내려 하고 있다. 한국이 여기에 동참하면 미국에 큰 힘을 보태게 된다. 그 중요성은 냉전시대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강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 재무장해서 미국의 동맹국으로 나서면 한국의 중요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셋째, 경제적 중요성이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의 중견 선진국이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 경제에 크게 도움이 못 된다면 한국을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이 안보이익을 위해 경제적 손실을 다소 감수한다면 한미동맹 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자생(自生) 능력이다. 미국이 도와주지 않으면 자생할 수 없는 나라라면 미국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있는데 핵 보유국과 상대하기 위해 1%의 자위력(自衛力)이 모자란다고 할 때, 미국은 한국을 도우려 할 것이다.

미국은 한국을 동북아시아에서의 중국확장억제 방어망에 참여시키고 싶어하고 있다. 2017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을 생각이 있는지, 한국이 계속 도와줄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얘기만 하고 갔는데, 이는 일종의 탐색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민들이 마음을 졸이면서 걱정하던 어떤 돌출적인 발언도 하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표출하지도 않았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는 국회 연설의 대부분을 자유롭고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가난한 독재국가 북한과 대비(對比)하는 것으로 채워 한국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미국의 바람에 역행하는 한국

하지만 이 연설을 자세히 살피면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고수하는 나라로 남아 달라”고 당부하는 뜻이 담겼음을 알 수 있다.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한국이 비(非)민주주의 국가인 중국과 미국 간의 ‘균형외교’를 추구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연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트럼프의 방한에 즈음해 북한에 대한 군사압박을 보여주기 위해 구상한 한•미•일 3국 해군합동훈련은 바로 한국 정부의 생각을 떠보는 시금석(試金石)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한국이 이 기회에 한미동맹을 앞세워 선명하게 미국 편에 서겠다고 하면 미국은 새로운 아시아 정책인 ‘태평양-인도양 자유개방구상’의 동북아 축으로 한국을 미일동맹과 통합하여 한•미•일 연대(連帶)의 구성국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런 미국의 바람에 역행(逆行)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베이징에 가서 ‘3불 정책’을 약속하고, 동해에서 실시한 3국 해군합동훈련에 불참을 결정하고, 트럼프의 ‘태평양-인도양 협력체제’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에서는 한국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나라(swing state)라거나 ‘믿을 수 없는 정부’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

최근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과 전쟁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면 북한을 제압하는 데 30분 이상 걸리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이 미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전쟁을 결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루시타니아호가 격침됐을 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기습을 당했을 때, 미국민들은 바로 모병소 앞에 줄을 섰다. 미국민들은 그런 국민이다.

북한이 ICBM을 발사했을 때 동해상에는 미국 이지스함이 있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다. 요격 능력은 갖고 있지만, 지켜보는 것이다. 미국은 어쩌면 김정은이 더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과 군사협력 필요

국가안보를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일본과의 협력이다. 일본의 협력이 없으면 우리는 북한과 전쟁을 할 수 없다.

특히 일본이 갖고 있는 정보자산이 중요하다. 우리는 군사위성이 하나도 없지만 일본은 갖고 있다. 동해에서 우리 해군이 잠수함 작전을 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갖고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잠수함 작전을 하려면 해저 지형, 해류, 바닷속 수온 등에 대한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잠수함을 운용해 온 일본은 이에 관한 정보를 많이 축적하고 있다.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위해 필요한 것이 군사물자를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물품역무(役務)상호융통협정(ACSA•Acquisition and cross-servicing agreement)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이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체결하려다가 비밀리에 추진했다 하여 언론의 비판을 받고 무산된 적이 있다. 박근혜 정권 때 체결되기는 했지만 절반만의 군사정보보호협정이다.

과거사 문제 때문에 일본과의 군사협력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는 학자들에게 맡기고 안보를 위해 일본과의 협력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킹 메이커’를 기다리며

국내적으로는 보수 세력이 무너져 있고, 국제정세도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아무리 봐도 구심(求心)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해방 후에는 리더로서 이승만 박사가 있었고, 신익희•조병옥 같은 분들이 있었다. 국민들이 ‘저런 분이면 믿고 따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분들이 있었다. 지금은 쳐다볼 사람이 없다. 반전(反轉)의 계기도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현 정권이 하는 일을 보고 국민들이 놀라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에 실망했던 사람들조차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이러한 걱정을 대변하고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우리의 대한민국’을 지켜내려면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이 ‘킹(King)’이 되려는 생각 대신 ‘킹 메이커(King maker)’가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당장 2018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후보를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세워 승리한다면 여기에서부터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면 위기 극복의 무서운 힘을 쏟아낸다. ‘국민의 뜻’에 영합해 국민들에게 끌려다니는 지도자가 아니라, 앞에서 국민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나서서 파편화한 사회를 하나로 묶고 국민들을 바른길로 인도한다면 지금의 위기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월간조선 2018년 1월호

李相禹
1938년 출생.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
한국일보•조선일보 기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장, 한림대 총장,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신아세아질서연구회 이사장 겸 회장, 현 신아시아연구소장/《정치학개론》 《국제정치학강의》 《북한정치》 《살며 지켜본 대한민국 70년사》 등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 ?
    김상각 2018.01.22 01:19
    이상우 교수의 통찰력있는 글이다. 읽고 또 읽어본다.
    그리고 많은 동문이 읽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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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43 내 친구 延鳳模 를 추모하며 1 신승일 2018.06.01 161
10642 홍콩 마카오 심천 여행(동영상) 김태환 2018.05.21 80
10641 제 27회 선농축전에 우리 참여 하다 김태환 2018.05.14 63
10640 고 연봉모 송정헌 2018.05.09 90
10639 《안개의 식생활 2》 - 박지웅 - 김혜숙 2018.05.09 39
10638 5월의 詩 - 이해인 베두로 2018.05.08 30
10637 고 연봉모 1 송정헌 2018.05.03 114
10636 《연가(戀歌)》 - 이근배 - 김혜숙 2018.05.01 55
10635 "사과 안 해도 된다"는 베트남이 더 무섭다" 허풍선 2018.04.02 60
10634 《홀로움》 - 황동규 - 김혜숙 2018.03.19 65
10633 지금도 노예는 존재한다 / Richard Lee 베두로 2018.03.18 69
10632 2018년 서울사대부고 9회 이사회 염정자 2018.02.26 139
10631 감사합니다 / 이해인 홍순진 2018.02.24 50
» 한국의 위기 / 이상우 교수 1 조규화 2018.01.22 135
10629 겨울 사랑 / 고정희 홍순진 2018.01.08 111
10628 2018년을 맞이 하며 - 李世民 의 한시 《守歲》 김혜숙 2017.12.31 80
10627 Merry Xmas and Happy New Year! 김인중 2017.12.22 133
10626 해오름을 보며 성탄축하 홍순진 2017.12.18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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