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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머니는 객지로 햑교 보낼 형편이 없으니 농사를 지으라고 하셨다. 나는 더 이상 학교 다닐 수 없다고 생각하니 한없는 좌절감 속에 방황하고 있었는데, 그때 서울로 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친구가 나를 보고 “ 서울에 가서 시험도 한번 보고 서울 구경도 하고 오지 왜 그렇게 보내느냐”고 한 말에 나는 농사 짓기 전에 서울 구경도 해 보고 오는 것이 추억이 될 수 있겠다고 믿고 그를 따라 가 보기로 했다.

서울은 6.25 휴전 이듬해 라 어수선 했지만 시골에 피난 왔던 친척집을 찾아가 몇일 간 머물며 친구 와 함께 학교 시험도 보고 시내 구경도 다 한 후 집으로 돌아 가려는 순간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앓고 있었던 탈장이 심해 시골에 가도 고칠 수 없다고 생각 하고 무료 치료 해 줄 수 있다는 한 종합병원을 찾아 가 보았다. 뜻 밖에 의사님이 수술 치료 해 줄 수 있는데 다음날 보호자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내가 보호자도 없이 혼자 서울에 온 사연을 들으시고 잠시 나를 보더니 다음날 그대로 오라고 했다. 친구는 다음날 먼저 집으로 내려 가고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혼자 병원에 가서 그 의사님의 집도로 전신 마취 수술을 받고 병실에서 깨어 났다. 매우 아픔을 느꼈지만 아 ! 나는 드디어 나의 병을 무사히 고치게 됬다는 생각에 아픔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당시 병원은 각국의 구호 물자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영국간호원 있어 매일 의사님과 함께 병실에 순방 와서 나를 귀여워 하며 특별히 외국 여러나라에서 보내준 선물을 주고 갔는데 각종 그림도구가 가득히 들어 있어 면회 오는 사람도 없는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 그리고 창밖의 풍경 등 을 그리며 아픔을 견디고 있었는 데 의사 간호원들이 나의 그림을 보고 모두 몰려와 감탄해 줬다 . 나는 이제 좋은 추억을 남기고 집에 돌아 갈 수 있겠다 하고 퇴원 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 보다도 나를 가장 귀여워 해준 영국 간호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서울 에 와서 시험 본 이야기 그러나 가정 형편으로 포기 하고 돌아가 농사지을 것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동안 병 간호를 해준데 대한 감사함 을 영어로 쓴 글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퇴원을 앞두고 뜻밖에 의사님과 영국간호원이 원장님께 건의 하여 내가 병원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퇴원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이때 처럼 꿈만 같이 기뻤던 때는 없었다. 친구 따라 서울 구경하고 시험도 보고 병도 고치고 학교 까지 다니게 될 줄이야 . 병원은 공부 하기에는 열악 했지만 학교 다닐 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기뻣는지 모른다.

입학 후 먼저 찾아간 곳은 8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셔 시골고향으로 이사 가기전 살았던 인천 시청관사를 찾아가 보았다 . 인천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정원이 넓은 2층집 앞에 서서 퇴근하는 아버지 손 잡고 집에 들어가던 추억을 생각하다가 그 이웃집에서 살던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친구 종복이 집을 찾아 가 만났는데 그는 인천 고교에 입학하여 우리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서울대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로 특차시험으로 전국의 영재들이 많이 들어간 우수 학교 로서 특별히 개인별 취미에 따라 과외 활동이 열성적이 였 는데 나는 미술반에 있었지만 어느날 교내 문예 발표대회가 있어 나는 시골 우리집 한여름 밤의 목욕 모습을 쓴 시를 써 제출 했는데 생애 처음 쓴 시가 뜻밖에도 시문학 부분 최 우수작으로 수상을 받았다 .

지금은 농촌도 현대화 되어 문화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린시절 목욕은 개울 이나 우물가에서 하든가 부엌에서 데운물 담은 나무통에서 하고 더운 여름엔 뒤 울안에서 했으니 요즘 어린이 들은 상상하지 못 할 것이지만 오랜 추억의 시를 기억으로 찾아 올려 보았다.

그후 친구들은 내가 인문학 계통으로 나가리라고 믿었지만 나는 사관학교에 가서 문예분야 와는 먼 야전군 생활로 지내다가 은퇴 후에야 글도 많이 쓰고 늙어서 수필춘추 문학 등단 작가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마라톤에 푹빠져 있으면서 나의 삶을 그린 수필집을 만드는데 열중 하고 있다.

- 정유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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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환 2017.11.27 16:02
    정 유희씨 고등학교때 쓴 시가 기성시인이 쓴 시 보다 너무 좋다. 칭찬 해 주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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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희 2017.11.27 18:07
    정유희 동문 한편의 소설같은 진솔한 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생활이 그대를 속이드라도.......' 퓨쉬킨의 시가 정유희씨를 위한 글들인거 같군요
    저도 대학다닐때 고생을 많이 해서 나만 힘들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유희 동문에 대면 아무것도 아니네요
    정유희씨 용감하게 정말 잘 헤쳐나왔어요
    그 뚝심으로 마라톤도 100회를 돌파하신거지요
    젊어서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정동문을 위해서 있는거 같군요
    그래서 성공한것이지요
    후속 프로그램은 구인회때 이야기 해 주셔요 기대할게요
    정유희 동문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