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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흑매화 (黑梅花)


◇ 화엄사 흑매 ⓒ 조선일보





 구례 화엄사 각황전 오른편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 서 있지요.
 해마다 봄이 오면 그 나무를 생각합니다.
 섬진강 물 따라 거슬러온 바람이 강가의 여린 매화꽃 먼저 피우고
 노고단 자락으로 오르다 한번 숨 고르고 가는 땅,
 바람만큼 오래된 옛 나무 등걸에 고운 손길 어루만져 피워내는 꽃,
 이끼 낀 등걸은 ‘부끄럽다 부끄럽다’ 말은 못하고
 붉다 못해 검붉은 꽃 피워냅니다.

◇ 화엄사 흑매 I ⓒ 들찔레
     오래된 임이 있어 찾아가는 길, 떨어진 꽃잎 밟고 찾아가는 길,
     들 길 칠백 리, 물 길 삼백 리, 고갯길 백 리,
     들길따라 강 따라 산 너머 찾아가는 길,
     몸을 푼 강처럼 데워진 바람처럼 찾아가는 길,
     임은 아직 먼 길에 있고 서툰 잰걸음으로 다가가는 길,
     해는 아침부터 내려앉아서 봄비에 임 향기 꽃비 타고 전해 오는데
     강하나 더 건너고 고갯마루 올라서니 부끄러이 발걸음 떼지 못한
     임의 붉은 빛 얼굴에 설핏 고인 눈물자욱 아득합니다.

      ◇ 화엄사 흑매 II ⓒ 들찔레


       꽃내음 가득한 임의 등걸에 찬 손 얹어 쓰다듬으면 오히려
       보드라운 푸른 이끼의 감촉으로 내 손에 꽃내음 가득합니다.
       겨우내 몸속에만 가두어두었던 그리움이란 그리움 모두가
       봄비를 부르고 꽃으로 피어서는 꽃비가 되고 꽃바람을 일으켜
       고운 봄 편지 강물에 띄워 보냈나 봅니다.

        ◇ 화엄사 흑매 III ⓒ 들찔레

         지난 밤 지새며 뒤척이던 몸부림에 새벽길 떠나 찾아온 임 곁에서
         날이 저물도록 밀어를 속삭이고 또 쓰다듬고 하였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오른편,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는 빗속에
         붉다 못해 검붉은 꽃 피워서 바람에 그 향기 얹어 나를 안아 줍니다.

          ◇ 화엄사 흑매 IV ⓒ 들찔레

           매화는 심은 사람이나 이유 혹은 지명에 의해 고유명사의 이름을 갖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만큼 귀하게 대접받은 나무이지요. 그런 이면에는 겨울을 이기고 봄소식을 전해주는 매화의 품위 있는 꽃 모양과 외유내강의 정신이 존중되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대표적인 것으로 산청지방에 있는 삼매(三梅), 즉 남사마을 원정매(元正梅), 단속사지 정당매(政堂梅) 와 산천재의 남명매(南冥梅)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모두 각각의 선비의 품성이 매화나무에 깃들어 있다는 생각으로 심겨진 것들입니다. 그러나 대개 상춘(常春)의 도를 넘지 않는 답사객들의 이름에 오르내리는 매화로 유명한 세 곳의 것으로는 제일 먼저 핀다는 금둔사의 홍매화, 선암사의 청매화, 그리고 화엄사의 흑매화를 듭니다.

            ◇ 화엄사 흑매 V ⓒ 들찔레

             홍매화가 지고 만 지난 늦은 봄이었습니다. 비 내리는 금둔사에서 이미 푸른 과육을 단 매실을 보며 안타까워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금둔사 홍매화를 봄으로서 비로소 봄이 옴을 안다고 할 정도니 언젠가는 꼭 보아야 할 숙제 중 하나였으나 올 해 그 숙제를 끝내었습니다.

             두 세 해 동안 봄, 가을로 선암사를 다닌 탓 중 하나도 봄 매화와 가을 은행잎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원통전 뒤의 오래된 매화가 보여주는 봄 풍경과 대웅전 뒤로 떨어지는 가을 단풍의 멋스러움은 절과 깊은 조화를 이루어 내는 풍경으로는 단연 으뜸입니다.

              ◇ 화엄사 흑매 VI ⓒ 들찔레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단 한 그루의 매화나무로 으뜸인 것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화엄사 각황전 옆 흑매를 들고자 합니다. 조선 숙종 때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짓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계파선사(桂波仙師)가 이 매화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300년이 훨씬 넘은 나무입니다. 따라서 이 나무를 장육화(丈六花)라 부르기도 하지만 대개는 특유의 짙은 붉은 색을 상징하여 흑매(黑梅)라 부릅니다.

               흑매는 우선 나무 등걸이 고풍스럽고 자연스레 휜 모습이 마치 옛 그림에서 봄직 합니다. 다른 매화들이 다 피고 난 뒤에도 아직 꽃을 피우지 않고 우리더러 시간을 참고 기다려라 일러주는 꽃이기도 합니다. 섬진강의 매화가 다 피고 져 가는데도 말입니다.

                ◇ 화엄사 흑매 VII ⓒ 들찔레

                 이 매화를 보기 위해 저도 몇 번이나 다녀가면서 아직도 완전히 만개한 모습을 보지 못하였는데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리운 님 보듯 만나고 왔습니다.

                 만개하여 피어 있는 꽃을 보면 다섯 장의 싱싱한 붉은 꽃잎이 뭇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침이면 아침대로 좋을 것이며 석양이 질 무렵 또한 아름다울 것입니다. 언젠가 봄이 아프거든 이곳으로 원행(遠行)을 하여 꽃의 붉은 마음 따오십시오. 아프도록 아름다운 꽃을 보며 아픔을 치유하십시오. 언제든 봄 길에 기쁨 나눌 일이 있다면 이곳을 들러 같이 나누십시오.

                [데일리안 배강열 칼럼니스트]


                ** 지난 3월 구인회 봄맞이 여행길 섬진강변에서 매화꽃을 많이 보았지만, 흑매(黑梅)는 그곳에 없었다. 홍매(紅梅)는 더러 눈에 띄었는데 붉은 색의 오묘한 색감이 강렬하였다. "피를 토하는 黑梅를 만날려면 구례 화엄사나 찾아가야 하나..."라는 김창현 동문의 말처럼 화엄사에 가야 흑매를 본다는데, 들를 시간이 없었다. 검은 색인가 궁금하던 흑매는 정말 핏빛의 진한 검붉은 색임을 위 사진에서 본다. '아프도록 아름다운 꽃'이라는 흑매를 인터넷에서나마 눈에 하며 다음해 봄에는 화엄사로 가서 흑매도 보고, 孤雲 최치원이 즐겼다는 명품 녹차도 맛봐야겠다. 《esso》



                  • ?
                    무성 2009.04.27 22:56
                    이런 글을 읽으면 우리말의 미묘함과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몸을 푼 강처럼 데워진 바람처럼 찾아가는 길," 은 서두름을 달래며 찾아가는 마음이 절절 합니다. "붉다 못해 검붉은 꽃 피워서 바람에 그 향기 얹어 나를 안아 줍니다."는 그꽃 찾아 가서 안겨 위로 받고 싶은 마음 주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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