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옹달샘, 단풍의 금수(錦繡)산

by 향기(28) posted Oct 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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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는 가로수 길을 지나서 충주 호반을 따라  벚나무가 심겨진
구비구비 길을 지나서 청풍대교 입구에 와서 갑자기 노련한 운전자로 바뀌며
원래 "가벼운 등산"으로 하자는 계획에서 완전히 방향이 달라졌다.
"단양으로 넘어가 금수산으로 가자~~~"
주변의 멋진 바위며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산을 보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 15년 살면서 유람선 타고 지나가며 단풍든 산을 바라보기만 했지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금수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간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따라 간 것이다.
---아니,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
제천서 단양 넘어가는 길과 금수산까지 가는 길은 구비구비 고개의 연속이었다.
차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멀미를 할 지경이었다.
중앙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길을 지나며 생전 처음으로 담배꽃도 보고 가로에 만든 화단
가득 핀 천수국도 보고 바로 홈피에서 본 키 작은 패랭이도 보며 멀리 소백산맥이 겹겹이
만드는 무한대 號 화폭의 그림도 보고 그저 마냥 즐거웠다.
금수산이 있는 단양군 적성리는 곳곳에 주황색 감이 꽃처럼 열려있었다.
길가에 "감과 단풍의 축제"라는 프랭카드가 무색하지 않았다. 어제까지였지만...

억새가 가득한 언덕 앞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촘촘히 심겨진 두충나무 숲으로부터
시작되는 넓직한 오솔길을 여유있게 걸었다.
출발 지점부터 "감"이라는 시(詩)를 써넣은 목판이 걸려있었다.
산에 다 올가도록 쉴만한 곳곳마다 시들이 적혀있어서 읽기도 하고 베껴 적기도 했다.
<갇혀있는 마음>     --- 이기원
여기 나 이렇게 있는데/ 이렇게 나 여기 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멀리/ 왜 그렇게 당신은 멀리
한참을 버티고 또 버텨/ 버티고 또 한참을 버텨
당신이 있던 그 자리에/ 당신이 있지 않고 내가/ 내가 있지 않고 당신이
한 순간을 살다가 이제/ 이제 한 순간을 살다가
기약 없는 약속을 남기고/ 정처 없이 나 떠도는가    
<심상> <갈대의 노래> <화전민>..... 맘에 드는 시가 너무 많다.

남근석 공원을 지나며 멀리 하늘을 보니 산 위에 구름인지 구름이 만든 산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하늘이 보인다.
첫 번째 옹달샘에서 한 모금 마신 물은 그 어떤 음료수 보다 맛있다.
기막히게 맛난 된장국에 김밥을 먹고서 나서 점점 가파라져 가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어울리는 노래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너머 물 건너" 등등
여러 곡을 추천 받았지만 다 놔두고 '한계령"을 숨차지 않을 정도의 조그만 소리로 불렀다.

올라갈수록 단풍나무의 색이 그렇게 다양할 수가...
노랑에서 주황, 빨간 색, 검은 자줏빛까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연두빛 이끼에 쌓인 바윗길을 한참 올라가며 아주 빨간 단풍잎, 몇 가지색이 한 잎에 다
들어있는 단풍잎, 자주빛에 가까운 느티나무 잎, 샛노란 잎새들을 줍느라 선두를 다른
이에게 내주었다. ("미단"에 온 친구들에게 줄 선물이다.)
서너 곳에 더 옹달샘이 있었는데 어떤 데는 아예 수질검사표까지 게시해 놓았다.
이 아름다운 산 속 옹달샘의 수질 같은 걸 따지며 마실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은데...

충주호가 내려다보이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일행들 보내고 공부방 시간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먼저 내려올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쉬웠지만
내려오며 갈색 나뭇잎들 밟으며 버석거리는 그 소리에서 짙은 가을도 느끼고,
노을이 아니어도, 하늘이 온통 붉고 노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고,
올라가며 미처 못 읽은 詩도 읊어보고....

오늘 이 금수산은 비단에 수를 놓은 산이 아니라
내 마음에 "시와 단풍 그리고 옹달샘"으로  수 놓아져서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