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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反者道之動)

 

홍 순 택    
 

   아직 장마가 남아있지만, 본격적인 휴가철이 왔습니다. 세월이 변하여 휴가를 굳이 여름에 가야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휴가의 대세는 여름이 아닐까요.

   여름 휴가... 이 단어 들으면서 떠올리게 되는 그림은 보통 이렇습니다.
  그림 하나. 녹음이 울창한 산이 사방을 둘러친 계곡, 높은 산의 병풍 틈으로 좁게 열린 시퍼런 하늘, 그 하늘을 호젓이 흘러가는 새털구름. 눈을 아래로 돌리면 계곡을 굽이쳐 떨어지는 시냇물과 물이 바위를 만나 일으키는 하얀 포말. 그 포말이 내 발을 간지럽히고 있고 물 속에 담겨진 내 발로부터 전해오는 서늘함이 등골을 서늘케 하고... 아! 그리고 이거 빠지면 재미없죠. 계곡에서 넓적한 돌 하나 구해 구워먹는 삼겹살 익어가는 지글지글 소리...
  그림 둘. 앞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광대한 바다, 옆으로는 역시 길게 뻗은 눈부시도록 하얀 모래밭, 뒤로는 바다보다 더 짙은 푸른색의 소나무 숲. 파도와 모래가 밀고 당기며 서로 사랑을 나누는 소리, 소나무 잎새를 스치는 바람소리, 저 하늘 위의 갈매기 끼룩끼룩,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님의 목소리. “나 잡아봐라~” 허허, 이것 참...
   여러 형편상, 또는 의도적인 계획 하에 집에서 책과 씨름하거나 시원하다 못해 추운 냉방을 해 주는 ‘명소’들을 순례하는, 또는 기타 등등 다른 방식의 휴가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도시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여름휴가를 꿈꿀 것입니다.

   무엇이 그리 좋기에 사람들은 매번 자연을 찾는 것일까요? 힘들고 지쳤을 때 자연을 찾아가면 진짜 새 힘을 얻게 되는 걸까요? 마음에 쉼을 얻게 되는 걸까요? 자연이 말 그대로 우리의 ‘어머니’이기 때문일까요?
   비슷한 이야기이겠지만 언젠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은퇴 후 계획을 묻는 설문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정확한 비율은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는 시골로 내려가 자연과 벗 삼아 살고 싶다고, 자연의 이치를 따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이야기 했다고 하더군요.(물론 농사일이 고되고 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전업농들께는 이런 이야기가 마땅치 않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요.)
   인간이 생물이어서 그럴까요? 자연에서 나온 존재여서 그럴까요? 높다란 콘크리트 빌딩들이 자꾸 들어서 눈에 보이는 하늘이 점점 좁아질수록, 하루 종일 걸어도 흙 한 번 밟아보기 힘든 아스팔트 위의 인생들에게 자연은 더욱 진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도시에서만 살며 자연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도 그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아마도 ‘자연’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 맞나 봅니다. 한 해의 대부분을 인공의 세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도시인들에게 휴가는 짧은 시간이나마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탈출구겠죠. 이제 도시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한바탕 탈주가 시작되겠지요.

   노자는 도덕경 40장에서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라고 했답니다. 오강남 교수는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입니다. 약함이 도의 쓰임새입니다. 온 세상 모든 것 ‘있음’에서 생기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났습니다.”라고 풀이하시더군요. “反者道之動”, ‘되돌아감’이 도의 움직임이라... 노자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뜻과는 다른 생뚱맞은 풀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존재의 근원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면 막연하게나마 사람이 자연을 동경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 담겨진 도가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요. 짧은 휴가철에라도 자연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이 놀기에 좋아서만이 아니라 어찌보면 내 안에 감추어진 도가, 인공의 세계에 의해 억압되었던 도가 아직 살아남아 꿈틀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꿈틀대는 도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한 채 자연을 찾아가서는 오히려 더 자연을 망가트리고 오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들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인공의 세계에 살게 되면서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의 근원인 자연, 즉 도가 억압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안의 도가 꿈틀대는 것에 부추김 당해 자연을 찾아가서는 도가 꿈틀대는 것을 아무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겠지요. 내 존재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근원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산업사회와 잘못된 놀이문화에 길들여진 대로 행동하다 돌아오는 것은 아닐런지요. 귀 있는 자는 들을지니...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며칠날 가게 될지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휴가 때도 예전처럼 회색도시 서울을 떠나 자연을 찾아갈 것이라는 거죠. 이 계획은 내 안에 태초부터 있어왔던 존재의 근원인 도가 꿈틀대기 때문에 세우게 되는 것이겠지요? 존재의 근원인 도가 나를 자연으로 초대하는 것이겠지요.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부터 반대쪽으로만 치닫는 산업사회와 도시문명에 길들여져가는 나를 존재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근원의 목소리가 다름 아닌 바로 내 안에서 터져나오는 순간이겠지요.
   올 여름 휴가 때는 이 근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까 합니다. 올 여름 휴가 가서는 자연을 보고 즐기고 그 안에서 쉬고만 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더 하여 그 자연 속에서 더 잘 들리게 될 내 존재의 근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보고 싶습니다. 그 소리를 분명히 기억하고 돌아와 회색 도시 속에서도 인간 존재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힘으로 삼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늘 내안에 있어왔던 자연의 목소리, 존재의 근원의 목소리를 늘 깨어 들을 수 있는 연습을 하고 돌아오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내면의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올 여름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휴가 잘 다녀오세요.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가장 하느님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으며 또 그렇게 살고 싶다는 홍순택 님은 생물학과 종교학을 공부했다.

ⓒ 2005 i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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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중 2008.08.03 08:27
    ♣ 자연은 자신이 타고난 재능과 아름다음을 최대한 발산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善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인간들은 반성하기는 커녕 과학이란 무기를 휘두르고 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하느님이 인간으로부터 아예 자연을 빼왔어 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영옥 동문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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