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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12 11:17

고운사의 호랑이

조회 수 24768 추천 수 2182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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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사의 호랑이

  삼월 초, 봄이 기지개를 펴고 나오다가 다시 기어들어 갔는가 산자락이 아직 쌀쌀하다. 어두운 저녁에 인적조차 없는 고운사는 한없이 고요하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부근에는 식당이나 여관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무작정 떠나고 보는 나의 여행이 시련을 겪는 순간이다. 일행 보기가 민망하지만 부딛쳐 보기로 하고 출입금지 구역인 절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조용하기 그지없는 곳에 차 소리가 나고 웅성거리니 누군가가 나올 수밖에…….
  “이 밤중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이 부근에 식당이나 여관 없습니까? 벼르고 별러서 이 절을 찾아왔는데 무슨 방안이 없겠습니까?” 없는 줄 뻔히 알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이곳에서는 외부 인이 주무실 수가 없습니다. 의성이나 안동으로 나가셔야 되겠군이요.”
  “나가는 것은 좋은데 내일 아침 이곳까지 또 와야 겠군이요. 그거 참…….”
  지금까지는 보살님과의 대화다.
  “아, 새벽 예불에 참석하시려구요.” 옆에서 듣고 있던 스님이 한 말씀하신다.
  “ ? 아, 예…….” 다급한 마음에 그렇다고 해놓고 속으로 실소를 했다. 일행 셋은 카톨릭 신자이고 나는 예불을 어떻게 올리는지 전혀 모를뿐더러 그럴 생각으로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깐 기다리세요. 의논하고 나오겠습니다.” 희미한 구원의 빛이 보인다.
  “방을 하나 내 드리겠습니다. 이리들 들어오시지요.” 이런 경우를 천우신조라 한다. 부처님 용서하십시요. 걱정 끝, 기쁨 시작! “스님이 우리를 재워주신단다.” 나는 소년이 되어 마음속으로 ‘야호!’
  한 이십명도 잘 수 있는 커다란 방인데, 재래식 온돌 아궁이에는 장작불이 타고 방안은 안온하고 훈훈하다. 한지로 바른 창호는 그 옛날 시골집 그대로다. 절 밥은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씻고 방에 들어가 앉으니 아련한 추억에 젖어든다. 인기척이 나더니
  “저녁 공양 맛있게 드셨어요? 일찍 주무시지요. 새벽 예불은 3시니까요.”
  어쨌거나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등을 지지니 극락세계가 따로 없다. 나를 포함한 세사람은 2시반에 기상, 또 한사람은 무사태평 코를 드르렁거리며 잔다. 마당으로 나가서 운판, 목어 북, 종 울리는 것 다 구경하고 대웅전으로 들어가자고 하니까 나 혼자 대표로 예불하라는 게다. 마음 다잡아먹고 스님들과 절 식구들 틈에 끼어 들었다. 생전 처음 컨닝을 하기 시작했다. 합장을 하고 절을 하고 꿀어 앉았다가 한차례 독경이 끝나면 일어섰다가 또 절 하기를 반복하는데 독경을 컨닝할 수가 있어야지……. 우리집 제사때 손자 녀석들이 어른들 따라 엉터리 절을 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고녀석들은 귀엽기나 하지. 그럭저럭 예불이 끝나고 나오니 밤하늘엔 아직도 별이 총총, 물소리 쏴아, 바람 선들, 내 걸음걸이는 넝큼 성큼 상쾌하기 그지없다. 어젯밤 우리에게 방을 주선해주신 스님은 알고 보니 출가한지 몇달 밖에 안되는 행자 신분이라며 나에게 말을 건네신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불교에 대해 잠깐동안 대담을 했다. 앞으로 큰 스님이 되셔서 우리 불교계에 우뚝 서실 분이라는 것을 느꼈다.

  절의 내력이나 불상, 건축 등에 대한 것은 생략하고 호랑이를 만난 얘기 잠깐하고 끝내려한다. 우화루라는 옛 건물을 보고 있다가 절의 일을 도와주시는 거사님을 만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니까 어디서 왔느냐, 무엇을 봤느냐고 물으신다. “절이 조용하고 좋군이요.” “예, 이 절은 참선을 하는 도량이라 그렇습니다만 저 호랑이 잘 보셨어요?” 우화루 옆 벽면에 커다란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데 무엇을 잘 보라는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까 “자, 이쪽에 서서 호랑이 얼굴을 쳐다 보세요. 그리고 저 계단 밑으로 내려가시며 호랑이를 쳐다 보세요.” 이게 웬 일인가. 그 호랑이는 목까지 내 쪽으로 움직이며 계속 나를 바라본다. 오르락 내리락 가깝게 멀게 이리 저리로 움직이며 보아도 계속 나를 따라 움직인다. 서산 마애불이나 모나리자는 보는 시각에 따라 그 미소가 달라진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허나 고운사 호랑이는 사람의 눈이 얼마나 부정확한가를 보여준다. 사람 외양만 보고 밉다 곱다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어느 스님이 그렸을까? 착시, 착각, 착오, 착란 등.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헛것들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동문들, 한가지 정보 드립니다. 고운사에서 영양쪽으로 지방도를 따라가면 사과밭이 참 많습니다. 꽃 필 때와 사과가 익을 때 가면 경치가 좋을 것입니다. 九珠嶺이라는 고개를 넘으면 백암온천이구요. 고갯길 주위에 별장이나 모텔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청정지역인 것 같습니다. 경북 내륙지방인 영양, 청송, 의성은 경치도 아름다우려니와 볼거리도 꽤 많습니다.

2003년 3월 11일
쇠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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