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산문 -
이태준의 수필 "조 숙 (早 熟)"
밭에 갔던 친구가,
" 벌써 익은 게 하나 있네,"
하고 배 한알을 따다 준다.
이 배가 언제 따는 나무냐 물으니 서리 맞아야 따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가다가 이렇게 미리 익어 떨어지는 것이 있다 한다.
먹어보니 보기처럼 맛도 좋지 못하다.
몸이 굳고 찝집한 군물이 돌고 향기가 아무래도 맑지 못하다.
나는 이 군물이 도는 조숙한 열매를 맛보며 우연히 천재들이 생각났다.
일찍 깨닫고 일찍 죽는 그들의.
어떤 이는 천재들이 일찍 죽는 것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했다.
천재는 더 오래 산다고 더 나올것이 없게 그 짧은 생애에서라도
자기 천분(天分)의 절정을 숙명적으로 빨리 도달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인생은 적어도 70, 80의 것이어니 그것을 20, 30으로 달(達)하고
가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오래 살고 싶다.
좋은 글을 써보려면 공부도 공부려니와 오래 살아야 될것 같다.
적어도 천명(天命)을 안다는 50에서부터 60, 70, 100에 이르기기까지
그 총명, 고담(枯淡)의 노경(老境) 속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인생의 깊은 가을을 지나 농익은 능금처럼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다.
"인생은 즐겁다!"
"인생은 슬프다!"
어느 것이나 20, 30의 천재들이 흔히 써놓은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가을, 70, 80의 노경에 들어보지 못하고는
정말 "즐거움" 정말 "슬픔"은 모를것 같지 않은가!
오래 살아보고 싶은 새삼스런 욕망을 느낀다.
- 이태준 수필집《무서록(無序錄)》중에서
우리나라 현대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1970)은 해방 직후에 월북하여 활동한 탓으로 남한에서는 오랜기간 그 이름도, 작품도 금기시 되어 왔었습니다. 10여년 전 해금과 더불어 그의 옛 작품들이 햇빛을 보게되면서 그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우리같은 일반독자들도 그의 작품들에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요즘에 1941년에 펴낸 수필집 '무서록'을 읽고 있는데 그 깊은 사색과 유려한 문장에 푹 빠져 있습니다. "운문은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란 말이 있을 정도의 뛰어난 문장가로 소설은 물론, 시, 동화, 수필, 평론, 희곡 등 문학의 여러 갈래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한 상허는, 해방 직후 자진 월북했으나 얼마 안되어 숙청당하고 비참한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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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외갓집에서 외삼촌의 서가에 꼽힌 수많은 문고판 중에서 이태준의 단편과 수필을 두루 읽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위 글이 벌써 67년전, 그러니까 2세대를 뛰어넘는 글인데도 다른 옛글과 달리 고리타분하지 않고 오늘의 문장감각에 그리
어긋나지 않다는걸 느낍니다. 총명과 고담(枯淡)의 노경(老境) 속에서 오래 살아보고 싶다...공감이 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