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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9 17:24

" 됐 - 거든 요!"

조회 수 797 추천 수 3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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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 - 거든 요!"




“됐 - 거든 요!”

참으로 어이없는 반응이었다.
붐비는 버스 속에서 내가 앉은 옆에 책가방을 메고 손에 또 다른 묵직해 보이는 손가방을 든 여학생이 서있기에 내 딴에는 거들어 주려는 마음에서 손을 내밀어 손가방을 붙잡았더니 그 여학생의 입에서 즉각적으로 나온 반응이었다.
순간 나는 성 희롱이라도 하려다 들킨 사람 모양 머쓱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재빨리 가방에서 손을 떼며 주변 사람을 둘러보았다.
다행이 나를 쳐다보며 야릇한 웃음을 흘려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내 머릿속에는 혼란이 일었다.
가방을 받아주려 했던 것이 잘못이란 말인가?
경로석이라고 표시된 앞쪽 자리가 아닌 중간에 앉은것이 불쾌하단 말인가?
혹시 말도 없이 손을 가방에 대서 놀랐던 것일까?

그 여학생의 얼굴을 보니 무표정 하게 창밖만 내다볼 뿐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두어 정거장 지나 나는 목적지가 아직 멀었건만 버스를 내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얼굴이 붉어지고 마음이 불편해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학생 시절에는 버스에서 누가 책가방을 받아주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또 어른이 아이들을 보면 귀엽다는 표시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는데 그것은 아주 당연한 행위로 여겼고 당하는 아이들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은 머리를 건드리는 것에 아주 강한 거부감을 표한다.
잘못 교사가 여학생 머리를 쓰다듬었다간 성 추행행위로 고발을 당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언어는 방송매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방송에서 쓰여진 말은 바로 유행의 물결을 타고 우리들 입에서 입으로 신속히 옮겨지고 그런 말들을 따라 쓰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됐-거든 요!” 라는 말을 나도 흔히 듣고 그거 재미있는 말이구나! 라고 생각하던 터 이었지만 막상 면전에서 직접 듣고 보니 황당한 기분이다.
내 생각에 그말 속에는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이 몹시 눈에 거슬리고 아니꼬운 생각이 들어 적대적 감정이나 비아냥거리는 뜻이 내포된 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즈음 젊은 층은 그 말을 꼭 그런 뜻으로만 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도 흔히 쓰는 말이라니 말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호의를 고맙게 받으면서도 사양하는 뜻에서 재치 있게 받아 넘기는 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버스속의 그 여학생도 악의없이 그런 뜻으로 무심결에 던진 말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아직까지는 그래도 그렇게 막된 의식을 갖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라 믿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은 자꾸 변한다.
바뀌는 세상 따라가자니 정말 힘든 다.
그래도 어쩌랴! 주어진 생, 살 때까지는 적응하는 척 하며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메아리-

  • ?
    이태식 - 2007.07.10 00:28
    클래식 매니어인 메아리님의 감칠맛 나는 이런 글도 참 좋군요. 됐거든요- 한마디를 풀이하며 유려한 글로 엮어낸 솜씨도 보통이 아닙니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