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범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郭樂圓) 여사
아들이 성년이 되었어도 아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가차 없이 매를 들고, 잔소리를 하는 엄한 어머니였다. 중인 아들과 만난 곽 여사는 “군관학교를 운영하며 많은 청년들을 거느린다 하니 잘못 하는 일이 있더라도 말로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했다. 남편 병구완을 위해 가마솥까지 팔아치우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남의 집 일을 돕고 길쌈을 해 아들의 벼루와 먹을 사줄 정도로 자식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황해도 치하포에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는다’며 일본인 쓰치다(土田壤亮)를 살해해 인천형무소에 수감됐을 때 곽 여사는 “나는 네가 경기감사를 한 것보다 더 기쁘다”고 외쳐 아들에게 힘을 북돋았다. 계획을 사전에 눈치 챘다. 능청스럽게 “그 돈을 그냥 주면 내 입맛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겠다”고 하며 돈을 받은 곽 여사는 자신의 쌈짓돈을 더 털어 권총을 구입한 후 “이것으로 왜놈을 죽이라”며 청년들 앞에 내놓아 모두를 놀라게 했다. 볼품없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어머니’로 임시정부 안팎에서 크게 존경받았다.
곽낙원 여사와 두터운 우애를 나누며 살았지만 아들 교육법에는 차이를 보였다. 아들을 엄하게 키웠던 곽 여사와는 달리 조 여사는 아들의 적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원했다. 사냥을 즐기는 장남 중근에게는 공부를 안 한다고 질책한 적이 없었다. 안중근은 숙부 안태건(安泰健)과 포수들을 따라 단총을 메고 수렵을 다니면서 사격술을 연마했다. 행동이 아니다”며 막았더라면 훗날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실수 없이 처단할 ‘안중근 의사’도 존재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는 게 학계의 오랜 정설이다. 어머니답게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장남이 독립운동을 위해 하직인사를 드릴 때 “집안일은 걱정 말고 끝까지 남자답게 싸우라”고 격려했던 그는 하얼빈 의거 후 아들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면회 가는 두 동생 편에 자신의 뜻을 알렸다. 렀단 말인가. 비겁하게 항소 같은 것은 하지 말고 깨끗이 죽음을 택하는 것이 이 어미의 희망이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천당에서 만나자.” 독립운동가들 먹이고 재웠고, 교민 사회에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면 온화한 인품으로 해결했다. 일가 40여 명이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한 안중근 가문은 한국 독립운동사 최고의 가문으로 우뚝 섰고, 그 중심엔 조마리아 여사의 ‘의로운 자율형 교육’이 자리하고 있었다. 섬멸하고 25세의 나이로 순국한 윤봉길 의사.
당시 농촌 아낙네로는 상당한 학식과 교양을 지닌 여성이었다. 평범한 농민이었던 아버지 윤황(尹__)은 장남 윤봉길 역시 순박한 농민으로 자라길 바랐지만 김 여사의 생각은 달랐다. 교육열이 대단해 유아시절부터 위인들의 이야기를 가르쳤고 봉길이 6세가 되자 큰아버지가 운영하는 서당에 보내 천자문을 배우게 했다. 같이 서당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김 여사는 여느 어머니처럼 호되게 야단만 쳤지만 장남에 대한 기대가 워낙 남달랐던 지라 애가 탔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바쁜 농사일도 팽개치고 몰래 글방 앞에 가서 안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장내를 정숙 시키고 아들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깨달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미 욕심에 어린 아들을 그토록 나무랐던 것을 뉘우쳤다. 낮에는 힘든 농사일과 집안일을 해내면서도 저녁엔 아들을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청년시절 마을 시회에서 장원을 독차지하며 이웃마을에까지 명문으로 명성을 떨쳤다. (초등학교) 중퇴에 불과하다. 김원상 여사에게는 교육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남자들마저도 나라의 독립에 대해 언급을 피했지만, 김 여사는 아들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항상 강조했다. 이어졌다. 마을 장터에서 만세를 외치던 어른들이 일본군경의 탄압에 피 흘리는 모습을 목격한 윤봉길은 “일제 하수인 되라는 학교에 나가지 않겠다”며 돌연 자퇴를
김 여사는 어린 아들의 의기(義氣)를 대견해하며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학업에 멈춤이 없도록 좋은 스승을 백방으로 알아보았다. 감시와 모욕을 당했다. 어느 날은 집을 감시하던 일본 순사가 “망할 놈의 집안 같으니. 아들을 흉악범으로 기르니 좋소?”라며 조롱하자 “우리 봉길이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돌려보낸 일도 있을 정도로 꼿꼿한 여장부였다. 의사의 상하이 의거는 김원상 여사의 이러한 ‘옳은 교육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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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9 05:48
"3人3色" 독립운동가 어머니의 자식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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