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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29 06:36

"4월에 걸려 온 전화"

조회 수 111 추천 수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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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by Nathaniel Skousen




              4월에 걸려 온 전화 _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 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가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정일근 시인 (1958년- 경남 진해 생) 경남대교수.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바다가 보이는 교실」,「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등 11권. 소월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등 수상






[감상 TIP / 詩人 林 步] 수십 년 전의 초등학교 동창으로부터 뜬금없이 전화가 걸려왔다면 좀 당황스럽겠지요? 그것도 서로가 은근히 좋아했던 이성 친구의 전화라면 말입니다. 위의 작품 속에 등장한 화자와 여자 친구는 오래 소원했던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러 만나기도 했고, 가끔 통화도 하며 지내는 처지인 것 같습니다. 그 여자 친구는 아내 곁에서도 개의치 않고 내 팔장을 끼며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라고 넉살을 부리기도 합니다.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인가 봅니다.

그 여자 친구가 전화로 화신(花信)을 전하며 한번 놀러 오라고 합니다. 혼자 된 친구가 봄꽃을 보니 쓸쓸한 마음이 들었을까요? 또 다시 봄이 되었구나 생각하니 세월이 참 빠르게 느껴집니다. 이젠 젊은 날의 두근거리던 감정도 다 가라앉고 만 중년, 꽃구경할 수 있는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서글픈 생각이 들자 문득 목이 멥니다. 그래서 화자는 ‘지는 꽃이 더 아름답다’며 다음에 가겠다고 사양을 합니다. 그러나 여자의 눈치가 보통 빠릅니까? 화자의 목멘 목소리를 듣고는 ‘너 울지? 너 울지?’하고 놀립니다. 그러다, 그만 저도 따라 울고 맙니다.

어쩌면 울고 싶은 쪽은 화자보다도 친구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먼저 울어주니 다행스럽다고나 할까요? 비록 중년의 나이이긴 하지만 아직 눈물이 있는 이들은 얼마나 순수합니까? 화자는 ‘눈물’의 이유를 ‘세월’에 돌리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사랑의 기회를 놓쳐 버린 아쉬움 때문인 지도 모릅니다. 친구의 ‘화신’ 역시 본의를 감춘 구실로 보입니다. 그리운 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나이가 들어도 가시지 않나 봅니다.






《es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