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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 우리 곁을 떠나 그분께로 가다

 

  장영희 교수.
본인이 기억하는 생의 첫 순간부터 중증장애인이었던 장영희 마리아.
첫돌이 될 때부터 소아마비로 병원을 자기 집처럼 다녔고, 어느 해는 침을 하루도 빠짐없이 365일 맞아야 했던 사람, 장영희. 그녀가 이제 갔습니다.
‘갔습니다’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서의 ‘간다’와는 아주 다른 평안함, 맡겨 드림, 그분께로 갔다는 의미에서 슬픔보다 더 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언젠가 장교수를 인터뷰하는 어느 글에서 장교수에게 ‘간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룬 적이 있지요. 장교수에게 ‘학교에 간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간다’의 문제’였다고 했지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장교수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학교에 갔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를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어머니는 두 시간에 한 번씩 학교를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는 입학시험을 치루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지만 당시 서강대학교에 갈 수 있었고, 서강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뒤 모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하려다가 갈 수 없었지요. 면접관들은 그녀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우리는 학부 학생도 장애인은 받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장교수는 어느 글에서 ‘오히려 마음이 하얗게 정화되는 느낌이었고, 미소까지 띠며 차분하게 인사한 후 면접실을 나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녀는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님께 낙방 소식 전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늦춰볼 양으로 동생과 무작정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킹콩’을 상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나는 전율처럼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바로 그 킹콩이라는 걸.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짓밟고 죽이려고 한다. 기괴하고 흉측한 킹콩이 어떻게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내 생애 단 한번] 중)


  그녀는 ‘영화 속 킹콩이 고통스럽게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쯤’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나는 살고 싶었다. 그래서 편견과 차별에 의해 죽어야 하는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토플 책을 샀고, 이듬해 8월, 그는 전액 장학금을 준 뉴욕주립대학교로 가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귀국해 모교인 서강대학교로 와서 교수로서, 작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고, 이제 우리 곁을 떠나 그분께로 갔습니다.


  그러나 장교수는 아주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 많은 독자들의 가슴 속에, 누구보다 제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는 제자들이 쓴 글들이 많이 올라 와 있다고 합니다.


  * 미국문학 시간, 선생님이 목발을 짚고 천천히 문으로 들어오실 때 가슴으로 퍼지던 행복감…

  * 남보다 느리게 걷기에 슬라이드 필름처럼 세상이 보인다고, 더 많이 보실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가장 가슴에 남는다.

  * 선생님이 미국에서 유학 중일 때 겨울이면 뉴욕대학 캠퍼스는 늘 눈에 덮였다고 한다. 무릎까지 묻히는 눈을 헤치고 도서관을 다니셨다는 선생님. 목발이 부러져 누군가 도움을 줄 때까지 혼자 캠퍼스에 앉아 계실 수밖에 없었다던 선생님. 어둡고 추운 그 겨울날, 그 고독을 이해하기에 선생님을 더욱 사랑한다.


  장교수는 이런 글을 썼었지요.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장교수는 이제 갔습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습으로는 분명 우리 곁을 떠나 갔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건네던 환한 웃음은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히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던 그녀가 이제 편안하게 하느님 품에 온전히 맡겨 드리며 갔습니다.

  저는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늘 너무 안쓰러웠는데, 이제 편안히 하느님께로 갔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의 숨을 쉬게 됩니다. 장교수가 넘어져 봤기에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 안에 다시 태어나게 될 때는 더욱더 선한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은 있는 그대로의 장영희를 사랑스러운 품 안에 받아주실테니까요.


  며칠 의식이 없는 상태였지만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무언으로, 그냥 숨소리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지요. 제 친구 장영희는 오늘 아침 아주 편안하게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드리며 그분께로 갔습니다.


  오전 9시 조금 넘어 병실에 갔었지요. 평소처럼 두 동생이 자리를 비켜주고 저와 두 시간 반 정도 같이 있었습니다. 기도라는 것이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니라 묵주 기도를 드리다가 그냥 성모 어머니께 “장영희 마리아를 맡겨드립니다. 받아주세요.”를 반복하는 것이었지요. 11시 40분 쯤 장교수 오빠가 오셔서 저에게 두 동생과 함께 점심 먹으라고 하셨지요. 두 동생은 벌써 며칠 째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언니 곁을 지키고 있었고, 제가 데리고 가서 억지로라도 식사를 하게 하지 않으면 쓰러질 것 같았지요. 점심 식사하고 올라와서 잠깐 얼굴 보고 저는 서강대 사제관으로 왔는데, 오빠에게서 돌발상황이라고 급히 택시타고 오라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갔더니 조금 전에 하느님께로 간 상황이었습니다.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제가 임종을 지켜보는 것은 원하지 않았던 가 봅니다.

  저는 장교수에게 후배이지만 장교수가 그냥 친구로 지내기를 원했고,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지요. 저는 장교수의 친구인 것이 늘 자랑스러웠지요. 가끔 친구라고 하기가 곤란한 자리에서는 “류 신부님은 제 새까만(?) 후배예요.”라고 하여 주눅 들게 하기도 했지만...


  장교수. 친구로서, 참 부족한 것이 많았던 나를 한결같이 가까운 친구로 대해 주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개의하지 않고 받아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편안히 가요. 이제 다시 일어나려고 할 필요 없어요. 그냥 하느님께 맡겨 드려요. 안녕히...

 

류해욱 신부 (예수회)

 


  알려드립니다.

  - 빈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 1실

  - 입관예절: 5월 10일 15시

  - 장례미사: 5월 13일(수) 9시, 서강대학교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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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주선 2009.05.12 07:45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장영희 후배가 결국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 갔다.
    학교에 같이 있을 때에는 후배가 자랑스러워 여러모로 마음을 쓰곤 하였다.
    언론에 너무 부각되듯 장애인 교수로서가 아니라
    매우 유능한 영문학자로서 학생들을 성심껏 지도하는 교육자로서 그를 기억한다.
    그는 다가올 때나 떠날 때나 그 모습이 아름다웠던 후배이었다.

    1981년 눈 오던 어느 겨울날,
    Albany, NY에서 안식년 중 서강대 출신 유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당시 뉴욕주립대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던 그가 힘 겹게 목발을 집고 들어와
    소녀같은 해맑은 미소를 주던 첫 대면의 그를 생각한다.

    육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 온 그는
    너절한 수많은 마음의 장애인들 틈에서 외로운 존재이었다.

    장 후배! 편히 안식하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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