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 妻 論 (2)
정 진권
내 친애하는 김 선생은 정년 7년차의 전직 교수이다.
나는 한 주일에 한 번 꼴로 그와 만난다.
만나서는 소주 한잔씩을 나누는데 안주는 대체로 삼겹살이다.
촐촐한 석양에 삼겹살 노릿하게 구워놓고 소주 한잔 쭉 하면 진시황 부러울 게 없다.
그래 한잔 두잔 기울이다 보면, 피아간에 본 이야기, 겪은 이야기, 사는 이야기
별의별 이야기가 다 쏟아진다.
다음에 적은 것은 그 동안 김 선생이 한 이야기 중에서
그 '마나님과 큰 아드님네'에 관한 부분들을 내가 발췌, 재구성한 것이다.
"큰아드님네와 함께 살 때"
김 선생 내외분은 딸 딸, 아들 아들, 넷을 낳아 길렀다. 그러니까 셋째가 큰아드님이다.
선생 내외분은 그 동안 큰아드님네와 함께 살았다.
거기 큰놈 작은놈, 초등학교짜리 두 사내 녀석이 있어 식구가 모두 여섯이었다.
아들이야 아들이니까 그렇다지만 지금 세상에 어느 며느리가 시 부모랑 같이 살자 하겠는가.
김 선생 마나님은 그 며느님이 여간 기특하지가 않았다. 해서 친구 들에게 자랑도 해댔다.
두 분은 가톨릭 신자다. 그 동안 김 선생은 주일마다 마나님을 옆에 태우고 9시 미사엘 갔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이었다.
마나님이 말하기를 다음 주부터는 새벽 6시미사에 가자고 했다.
우리가 9시 미사에 가니까 며느리가 아침을 지으려고 일찍 일어나요.
그러니 이 아이들이 일요일 아침인들 어떻게 늦잠 한번 자 보겠어요?
김 선생도 기꺼이 동의했다. 깨닭은게 좀 늦긴 했지만 말인즉 옳아서였다.
새벽미사는 7시에 끝난다. 그러면 두 분은 근처 해장국집으로 간다.
역시 큰아드님네 늦잠을 위해서다.
더러는 해장국을 포장해서 차에 싣기도 했다. 그 다음엔 장을 보러 갔다.
장엘가면 마나님은 물건을 고르고, 김 선생은 카트를 밀었다.
마나님이 사는 것 중에 생닭과 게장은 빠지지 않았다.
닭백숙은 큰놈이, 게장은 작은놈이 퍽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닭과 게장을 살 때 마나님은 늘 빙긋 웃었다.
김 선생댁 아침 식탁은 참 바빴다. 큰 아드님 출근하랴 두녀석 학교가랴,
이야기 한 마디 변변히 나눌 수가 없었다.
역시 즐거운 건 저녁 식탁이었다.
이야기소리, 웃음소리, 땡하고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
그러나 마나님은, 닭다리 하나 들고 킬킬거리는 큰놈,
노란 게알 찍어다가 밥에 놓으며 싱긋 웃는 작은놈,
두 녀석을 바라보는 것이 제일 즐거웠다. 그때 마나님은 뭔가 집안이 가득 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