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 妻 論 (2)
정 진 권
"큰아드님네가 떠난 후"
큰놈이 6학년 때니까 한 2년쯤 되었나 보다.
큰아드님이 미아리 김 선생 댁에서 먼 서초동에 사무실을 냈다.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날마다 밤 12시 아니면 새벽1시에 들어왔다.
술 한잔하고 대리운전을 시키는일도 비일비재였다. 더러는
찜질방에서 자고 안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일요일은 온 종일 잠만 잤다.
김 선생 내외분은 그게 항상 불안하고 안쓰러웠다. 애가 얼마나 고달풀까?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큰아드님이 마나님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사무실 근처로
저희들 나가야겠어요. 저도 힘들고 ,아이들이 크니까 집도 자꾸 좁아지고. 한 3년
열심히 일하면 좀 너른 집을 마련해서 다시 모실 수 있을 꺼예요." 마나님은
"그래라, 그래야지" 하면서도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며느님이 그런
마나님의 손을 꼭~~잡았다.
"어머님, 3년이어요. 저희 매주 일요일 꼭 올께요."
지금도 두 분은 새벽 6시 미사엘 간다. 어느새 새벽미사가 좋아진 것이다. 새벽에
가면 성당에 사람도 붐비지않고 공기도 상큼하다. 그러나 해장국집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 김 선생이 가자고하면 집에 찬밥 많다며 마나님이 퇴자놓기 일쑤다.
장 보러 가는 일도 뜸하다. 아이들 올지 모르니 장보러 갑시다, 하면 마나님은
"저 지난주일에 사다 놓은 것 냉동실에 그냥 있어요" 한다.
며느님은 "저희 매 주일 꼭 올께요" 했지만 그것은 처음 몇 달. 큰놈이 중학교엘
들어가더니 일요일에도 학원엘 간다. 큰아드님도 일이 더 많아져 일요일도
쉬지 못한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쯤, 해 질 무렵에 와서 저녁 지어먹고 잠깐
앉았다 간다. 큰아드님네가 갈 때면 두 분은 아드님 차의 빨간 꼬리등이 안보일때
까지 대문 앞에 서 있다가 들어온다.
그때 마나님은 뭔가 집안이 텅 빈것 같다.
참 여기 한 가지 빠진게있다. 선생댁 냉장고의 냉동실 이야기다. 비록 시장은
자주 안가지만 이 냉동실이 비는 날은 없다. 큰아드님네가 다녀가고 나면
마나님이 금방 채우는 것이다.
꽉 찬 냉동실, 마나님의 기다림으로 더 꽉 찬다.
■ 글 쓴이는, 한국 체육대학의 국어과 교수에서 정년퇴직한 분이고
우리 모교에서도 국어 교사로 재직하셨던 수필가이심.
저서로는 [따로따로 떨어지기] [ 한 수필가의 짧은 이야기]
[내 아내는 잘라 팔 머리가 없다] [ 漢詩가 있는 에세이] 등이 있다.